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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사생할 12

 

(라이언) 왜 아무것도 안 물어봐요?

 

꿈을 꿨어요

 

(덕미) 무서운 꿈이었어요?

 

그냥 꿈이 아니라

 

내 기억이라 무서운 꿈

 

보육원에 버려졌던 날의 꿈

 

[잔잔한 음악]

 

해외 입양 되기 전에

 

7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는데

 

그날만은 희미하게 떠올라요

 

내 손을 차갑게 떼어 내던

 

그 느낌이

 

그 순간이 생생하게

 

그래서

 

(라이언) 그래서 잡은 손을 놓는 게 싫거든요

 

혼자 남겨져서

 

그 기분을 감당하는 게 싫어서

 

지금은 괜찮아요?

 

이렇게 같이 있잖아요, 덕미 씨랑

 

안 되겠네 그럼 계속 같이 있어야겠네요?

 

한숨도 안 재우고 출근을 시키겠다?

 

 

아니, 저도 어렸을 때 무서운 꿈 자주 꿨거든요

 

무슨 꿈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엄청 소리 지르고 울면서 깨곤 했어요

 

(덕미) 그럴 때마다 온 가족을 잠도 못 자게 하고 막 괴롭혔거든요

 

그럴 때마다 엄마가

 

저를 억지로 재우는 게 아니라 밤새 같이 놀아 줬어요

 

오늘은

 

제가 관장님이랑 놀아 드릴게요, 밤새

 

- 밤새? - 밤새

 

- 가요 - 어디를…

 

어디겠어요?

 

대신 한번 들어오면 못 나가요

 

따라와요

 

(덕미) 잡을 때가 어디 있나

 

[흥미진진한 음악]

 

뭡니까, 이게?

 

'더 워 오브 더 플라워스' 꽃들의 전쟁, 화투

 

(덕미) 갈 것이냐, 말 것이냐, 고스톱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아주 심오한 놀이죠

 

밤새 놀자던 게 이겁니까?

 

 

뭐 하고 싶은 거 있었어요?

 

아니요, 없는데요?

 

색채가 아주 강렬하네요

 

트럼프가 기호학적이라면 화투는 디자인적 요소가 강하군요

 

그건 뭐, 크게 상관없고요

 

(덕미) 여기서 이제 메인 룰 중에 엑기스만 뽑으면

 

자, 보세요, 여기

 

새 다섯 마리, 세 마리 한 마리, 한 마리

 

이거는 고도리

 

자, 이건 5점이에요

 

응, 이름까진 필요 없고

 

그리고 여기 보면 광이라고 적혀 있는 거 다섯 개가 있잖아요?

 

이건 5광

 

이게 5장, 15점

 

얘네 둘이 진짜 좋은 거

 

그리고 여기 보면 미스 코리아처럼 이렇게 띠 두르고 있는 애들 있죠? [라이언이 대답한다]

 

아무것도 없는 애들은, 이건 초단

 

빨간 거는 홍단 그리고 파란 건 청단

 

얘네는 3점씩, 3, 3, 3

 

그래서 5, 5, 3, 3, 3

 

그리고 나머지 피들은 많이 가져가면 가져갈수록 좋아요

 

어차피 봐도 지금 모르니까

 

- 많이 가져가면 좋은 거다? - (덕미) 네, 네

 

자, 설명은 여기까지

 

끝?

 

[웃으며] 고스톱은 원래 설명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맞으면서 배워야지 안 잊어버려요

 

(덕미) 자, 시작

 

[덕미가 패를 탁탁 집는다]

 

맞아요?

 

[리드미컬한 음악]

 

[덕미의 탄성] 꽝, 꽝, 꽝

 

- (라이언) 꽝, 도깨비, 꽝 - (덕미) 얘는 보너스

 

왜, 왜요? 내 거 왜요?

 

축하한다고 선물

 

- (덕미) 자… - 내 거…

 

[빨리 감기 효과음]

 

(덕미) 잠깐

 

내가 당연히 여기서 고를 해야 되는데

 

불쌍해서 봐준다, 스톱

 

- 불쌍해서… - (덕미) 자, 그러면 10점에 피박 더블

 

(덕미) 20대인데 그러면 내가 봐줘서 두 대만 때릴게요

 

왜, 왜, 왜, 왜 20점이에요?

 

이거, 이거 피박

 

- 이거 안 먹으면은 두 배입니까? - (덕미) 응

 

제대로 설명을 했어야죠, 그러면은

 

(덕미) 하, 두 대만 때릴게요

 

원래 이런 데서 사귀는 사이라고

 

막 살살 때리고 이러면 재미없는 거 알죠?

 

아니, 세상에 이런… [덕미가 입바람을 후 분다]

 

[덕미의 웃음]

 

[놀란 신음]

 

많이 아팠어요?

 

[덕미가 탁 때린다]

 

[덕미의 웃음]

 

[경쾌한 음악]

 

(덕미) 폭탄

 

원, 투, 쓰리

 

오, 쓸

 

[덕미가 탁 때린다] [덕미의 웃음]

 

[덕미의 웃음]

 

(덕미) 자, 일단 얹어 주시고요

 

당 충전됐습니다, 다시 가시죠

 

이제 그만하죠

 

재미도 없고

 

[밝은 음악]

 

재미없어요?

 

좀 재밌는 것 같기도 하고

 

몇 대였죠?

 

다섯 대였나?

 

다섯 대요?

 

50점 나지 않았어요?

 

[덕미가 뽀뽀를 쪽쪽 한다]

 

[라이언의 웃음]

 

재밌죠? 한 번 더 할까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TV 속 여자) 돼지촌에선 어떻게 오셨나요?

 

(TV 속 남자) 자전거 타고 인력거 타고 [덕미가 입소리를 쉭 낸다]

 

(덕미) 아, 아 [TV 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함께 웃는다]

 

[덕미의 웃음]

 

[TV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TV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덕미) 예쁘죠?

 

좋다

 

[잔잔한 음악]

 

그만 가 볼게요, 얼굴도 봤으니까

 

충전됐어요

 

자는데 미안해요, 들어가 봐

 

[라이언이 흐느낀다]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주혁아, 오늘 원두 주문…

 

제가 주문할게요, 확실하게!

 

[주혁의 놀란 신음]

 

쯧, 그래

 

남의 편한테 내 인생도 맡겼는데

 

너한테 이거 하나 못 맡기겠니?

 

주문해, 네 마음대로

 

[다가오는 발걸음]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덕미) 떡보다 상징, 선주

 

(선주) 아니, 이게 누구야?

 

연애하느라 바쁜 내 친구 성덕미?

 

(덕미) 아이, 그래도 소울메이트보단 덕질 메이트지, 자

 

(선주) [놀라며] 이게 뭐야?

 

 

그래, 친구한테 시간 못 쓸 땐 돈이라도 써야 되는 거야

 

[덕미의 웃음]

 

고마워

 

(덕미) 맘 상했다고 몸까지 상하면 안 돼

 

이럴 때일수록 잘 챙겨 먹어야 된다고

 

- 나밖에 없지? - (선주) 응

 

(선주) 넌 어때? 덕밍아웃하니까 살 만해?

 

(덕미) 참, 그, 피디님이랑 화해는 했어?

 

솔직히 너한테도 미안해

 

(선주) 걱정 끼친 것 같아서

 

미안은 무슨, 우리 사이에

 

내가 그 인간 죽을 때까지

 

평생 가시방석에서 먹고 자게 할게

 

(덕미) 피디님 용서해 드려

 

뭐, 우리 몰래 자료 빼 간 건 분명히 잘못한 일이지만

 

왜곡 보도도 아니고

 

그리고 시나길이

 

일반인 스토킹한 것처럼 보인 건 우리 잘못도 있잖아

 

- 덕미야 - (덕미) 응?

 

남녀 문제는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어

 

이건 감정 문제야

 

인정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은기) 나 아이스 아메…

 

리카노

 

[은기의 멋쩍은 신음]

 

[은기의 힘주는 신음]

 

출근하냐?

 

 

- (주혁) 형, 아아 드려요? - (은기) 어

 

오늘 비 온다는데 우산은 챙겼어?

 

우산? 어, 사, 사무실에 있어

 

아, 다행이네

 

(덕미)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나 먼저 가 볼게, 그럼, 갈게

 

(선주) 어, 가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남은기

 

너 혹시… [문이 탁 닫힌다]

 

고백했어, 덕미한테

 

[놀라며]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너 어쩌려고 그래?

 

언제까지 마음에 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한숨]

 

진짜 어쩌냐

 

[잔잔한 음악]

 

성 큐레이터님

 

(덕미) [놀라며] 어, 미안

 

내가 좀 늦었지? 회의 시작했어?

 

- 아직 다 안 모였어요 - 효진 씨도 안 왔고?

 

[피식 웃는다] (신디) 저 왔거든요?

 

[경아의 놀란 신음]

 

성 큐레이터님은 관장님을 좀 모셔 오시고요

 

(경아) 효진 씨는 이걸 절 주시고요

 

- (경아) 따라오시고요 - 왜요?

 

[발랄한 음악]

 

[문이 달칵 열린다]

 

관장님?

 

라이언 관장님?

 

[라이언의 당황한 신음]

 

[라이언이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린다]

 

[라이언이 테이블을 쾅 친다]

 

[덕미가 픽 웃는다]

 

근무 시간 아닙니까, 관장님?

 

어제 그, 아, 아무래도 사기를 당한 거 같아서

 

확인 중이었습니다

 

사기라니요?

 

전 어제 눈높이 맞춤 교육을 해 드렸는데?

 

가장 중요한 건 안 알려 줬지 않습니까?

 

가장 중요한 게 뭔데요?

 

비풍초 똥팔삼

 

하, 아직 그럴 레벨이…

 

(덕미) 다음에 심화 교육 해 드릴게요

 

자, 이제 회의부터 가시죠

 

아…

 

그렇게 때려 놓고 잠이 옵니까?

 

많이 아팠어요?

 

(덕미) 많이 아팠어요, 진짜?

 

[경쾌한 음악] (신디) 이렇게 작은 전시실을 만들어서

 

그림들을 전시하는 거예요

 

여기에 작은 소파나

 

어, TV 같은 작은 가구들을 추가할 수 있고요

 

나만의 작은 미술관

 

- (경아) 귀엽다 - (유섭) 괜찮은데요?

 

작가와 컬렉터들에게 이 상품에 대해 설명드렸습니까?

 

기획안은 보내 드렸고요 반응은 꽤 호의적인 편이었습니다

 

(라이언) 디자이너와 상의해서 패키징은 좀 더 심플하게

 

그리고 그 그림은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자석을 사용할 수 있는지

 

최소 생산 수량과 단가는…

 

그럼 이거 진짜 만들어서 파는 거예요? 우리 아트 숍에서?

 

판매량은 기대하지 말아요 이런 상품은…

 

저는 이거 완판될 것 같은데요

 

구매 예약하겠습니다

 

[유섭과 경아의 웃음] 꼭 완판시키겠습니다

 

걱정 엑스

 

제품 사이즈나 가구 미니어처는

 

(덕미) 아트 숍 구매자 대상으로 설문 조사 후에 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라이언) 특별전 일정 상황은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덕미) 도록은 디자인 수정 마쳤고요

 

인쇄소에서 1차 시안 견본 나올 예정입니다

 

보도 자료는요?

 

보도 자료는 작성 중이고

 

월간지 광고는 2차 수정 들어간 상태입니다

 

이제 채움 5주년 특별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라이언) 다들 바쁘겠지만 차질 없는 진행을 위해서

 

다시 한번 자기가 맡은 영역 체크 부탁드릴게요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이번 휴관일이 진짜 마지막 휴가겠네요

 

휴관일에 뭐 하세요?

 

음, 보육원에 가요

 

(경아) 미술 교육 봉사 활동 하러

 

보육원 봉사요?

 

뭐야, 그 이상한 뉘앙스는?

 

(유섭) [웃으며] 아, 아니요 역시 유 큐레이터님답다 싶어서

 

아니, 뭐, 쉬는 날에는 나도 쉬고 싶죠

 

(경아) 그래도 다녀오면 내 기분이 엄청 좋아지니까

 

(유섭) 혼자 가세요? 힘드시겠다

 

그럼 같이 가실래요?

 

- 갈게요, 같이 - 진짜?

 

성 큐레이터님은요?

 

- 좋아 - (경아) 그러면 우리 다 같이 가요

 

(신디) 저도요?

 

(유섭) 네, 와

 

(세연) 음, 맛있다

 

(영숙) 덕미 말이야

 

아니다, 아니다 그러더니 라이언 관장님하고 사귀고 있더라고

 

- 진짜? - (영숙) 어

 

[영숙의 웃음]

 

아이돌 쫓아다니는 거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영숙) 남자 보는 눈이 높아져 그런가?

 

외모에, 응, 능력에, 인성에

 

어우, 내가 이번에 우리 덕미 다시 봤다니까?

 

[옅은 한숨]

 

내가 너무 자랑했나?

 

아이고, 걱정 마

 

은기도 때 되면 좋은 여자 데리고 올 거야

 

우리 은기가 좀 멋있어?

 

[영숙의 웃음]

 

저, 저기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고풍스러운 음악] (근호) 은기가 색시 데려오면 제가 그냥…

 

(영숙) 당신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돌이나 닦아

 

그게 요즘 시아버지 트렌드야

 

[근호의 헛기침]

 

[웃음]

 

[한숨]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휴대전화 진동음]

 

[한숨]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는다]

 

- 주혁아 - 네, 네, 사장님

 

가서 컵이나 깨, 귀찮게 하지 말고

 

사장님, 우리 오늘 카페 문 닫고 나가서 놀까요?

 

[헛웃음]

 

넌 어떻게 된 애가 사장이랑 같이 땡땡이를 치려고 해?

 

[주혁의 한숨]

 

뭐 하고 놀 건데?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관객들의 환호]

 

(선주) 노래하러 가자며? 노래방 가자는 거 아니었어?

 

[기타 줄을 탁 튕긴다]

 

(주혁) 노래방보다 버스킹이 훨씬 더 재밌어요

 

여기서 노래를 어떻게 해? 사람들 다 보는데

 

[관객들의 환호]

 

아무튼 난 안 해, 갈래

 

사장님

 

사장님 제 팬이시라면서요

 

(주혁) 사장님의 가수가 노래를 하는데

 

이렇게 관객도 한 명도 없이 하게 할 거예요?

 

(선주) 알았어

 

[선주의 헛기침]

 

[주혁의 감미로운 기타 연주]

 

사장님, 이 노래 알죠?

 

(선주) 응?

 

(주혁) 이거 같이 해요

 

아, 빨리

 

[주혁의 감미로운 기타 연주]

 

(선주) ♪ 별 하나 있고 너 하나 있는 ♪

 

♪ 그곳이 내 오랜 밤 ♪

 

(선주) ♪ 이었어 사랑해란 말이 ♪

 

♪ 머뭇거리어도 거짓은 없었어 ♪

 

(주혁과 선주) ♪ 넌 화나 있고 참 조용했던 그곳이 내 오랜 ♪

 

우리 선주 [주혁과 선주가 노래한다]

 

저렇게 놀 때가 제일 이쁘네

 

(주혁과 선주) ♪ 안 될 거라 생각하겠지만 ♪

 

♪ 밉게 날 ♪

 

♪ 기억하지는 말아 줄래요 ♪

 

(주혁과 선주) ♪ 나쁘게 추억 말아요 ♪

 

♪ 오랜 날 오랜 밤 동안 ♪

 

(주혁과 선주) ♪ 정말 사랑했어요 ♪

 

♪ 어쩔 수 없었다는 건 말도 ♪

 

♪ 안 될 거라 생각하겠지만 ♪

 

♪ 밉게 날 ♪

 

♪ 기억하지는 ♪

 

♪ 말아 줄래요 ♪

 

♪ 아직도 잘 모르겠어 당신의 흔적이 ♪

 

♪ 지울 수 없이 ♪

 

[잔잔한 음악] [거친 숨소리]

 

[한숨]

 

[한숨]

 

(세연) 남은기!

 

(은기) 남 편, 남 편이 웬일이야?

 

너 운동 지겹지도 않냐?

 

이 시간까지 땀을 이렇게 뚝뚝 흘리고

 

운동하는 놈이 운동이 지겨우면 쓰나

 

간만에 엄마랑 산책 좀 할까?

 

그래

 

잠깐 기다려, 샤워하고 나올게

 

그래

 

[은기의 심호흡]

 

[차분한 음악]

 

(세연) 우리 아들 키가 이렇게 컸네?

 

어, 목 아파서 아들 얼굴도 못 보겠다

 

(은기) 자, 응, 실컷 봐, 응

 

(세연) 치, 으이그

 

[세연의 웃음]

 

많이 힘들지?

 

뭐가?

 

짝사랑

 

언니한테 덕미랑 관장님 얘기 들었어

 

우리 여기 잠깐 앉을까?

 

[은기의 힘주는 신음]

 

(세연) '잘됐다', '축하한다' 그 말을 했어야 되는데

 

차마 안 나오더라고

 

[한숨 쉬며] 우리 은기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만 나고

 

엄마

 

(세연) 엄마는 네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도 많이 힘들었어?

 

아빠 만났을 때

 

그래

 

(세연) 맨날 속타고 나 혼자 안달복달하고

 

내가 잠깐 미쳤던 거지

 

[함께 웃는다]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아들을 만났으니까

 

엄마 아들이 좀 많이 잘났긴 하지, 어?

 

[웃으며] 그래 그래서 남 주기 아까워 그런다

 

[함께 웃는다]

 

아들

 

넌 네가 사랑하고 널 사랑해 주는 사람 만나

 

엄마는 그냥 네가 그랬으면 좋겠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왜 힘든 일이지?

 

그냥 마음이 가는 거뿐인데

 

근데 그 어떤 경기보다도

 

내 마음이 더 쉽지 않네

 

(세연) 야, 뻐꾸기 엄마라도 옆에 있으니까 까먹지 마

 

(은기) 그럼요, 가시죠

 

[세연의 웃음]

 

[은기가 입소리를 쉭 낸다]

 

[자동차 트렁크가 탁 열린다]

 

[덕미와 유섭의 탄성]

 

(덕미) 이게 다 뭐야?

 

'색연필, 파스텔, 크레파스 사인펜, 물감, 전지, 간…'

 

이걸 다 혼자 준비한 거야?

 

[유섭의 놀란 탄성]

 

저야 뭐, 같이 가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 (덕미) 효진 씨도 가? - (경아) 그러게요?

 

[차 문이 탁 열린다]

 

[차 문이 탁 닫힌다] (유섭) 안녕하세요?

 

[덕미와 경아의 웃음]

 

[신디의 힘겨운 신음]

 

- (덕미) 이게 다 뭐예요? - (유섭) 어, 주세요, 주세요

 

[차 문이 탁 닫힌다]

 

화이트오션 CD요

 

(신디) 애들한테 우리 시안이 영업 좀 하려고요

 

(경아) 하, 참, 나

 

[헛기침하며] 근데 관장님은 안 오시나?

 

(유섭) 아, 그러게요 요즘 잔정 많아서 오실 줄 알았는데

 

헤어지셨어요?

 

(경아) 아, 김효진 씨!

 

아, 버릇이 돼서

 

관장님 이번 주에 많이 바쁘셨잖아 오늘은 좀 쉬셔야지

 

[다가오는 자동차 엔진음]

 

[차 문이 탁 열린다]

 

(덕미) 관장님

 

늦어서 미안해요, 일이 좀 있어서

 

(경아) 성 큐레이터님 관장님 차 타고 가실 거죠?

 

 

[밝은 음악]

 

- (경아) 이제 출발하시죠 - (유섭) 가시죠

 

[자동차 경고음]

 

[자동차 문이 탁 여닫힌다] [자동차 시동음]

 

(덕미) 오면 온다고 말을 하지

 

덕미 씨 놀라는 거 보고 싶어서

 

근데 이 인형들은 다 뭐예요?

 

(경아) 음, 보육원에 가요 미술 교육 봉사 활동 하러

 

[엘리베이터 도착 알림음]

 

[엘리베이터 버튼 작동음]

 

[엘리베이터 문이 탁 닫힌다]

 

[엘리베이터 도착 알림음]

 

어? 형!

 

차시안 씨?

 

에이, 말 좀 놓으라니까요

 

오늘은 큐레이터 누나가 안 보이네요?

 

아, 봉사 활동 갔습니다, 보육원에

 

보육원이요? 잘됐다, 잠깐만요

 

[엘리베이터 문이 탁 닫힌다]

 

이거 제가 팬들한테 선물받은 인형인데

 

(시안) 아직 기부를 못 해 가지고 대신 좀 부탁드릴게요

 

[밝은 음악]

 

(덕미) 아, 역시 우리 시안이 천사인가?

 

저기요, 가져온 건 저거든요?

 

잘했어요, 금 기사

 

'금 기사'?

 

금 기사, 출발해

 

[함께 웃는다]

 

(라이언) 금 기사, 출발합니다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아이1) 내가 이거, 내가 이거 [아이들이 저마다 말한다]

 

자, 친구들, 친구들, 여기 보세요!

 

(경아) 와, 잘했다

 

친구들, 지금부터 우리 진짜 진짜 재밌는 걸 할 건데요

 

그러려면 친구들이 자리에 앉아 줘야 돼요

 

선생님을 위해서 자리에 앉아 줄 수 있어요?

 

(아이들) 네!

 

(경아) 고마워요, 시작!

 

[경쾌한 음악] (경아) 친구들, 이거는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아주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이에요

 

이 그림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카메라 셔터음]

 

- (경아) 창민이 - (아이2) 계란프라이

 

(경아) 아, 이 동그란 게 맛있게 생긴 계란프라이 같다, 그렇죠?

 

또 뭐가 있을까?

 

- (아이3) 저요! - (경아) 어

 

- (아이3) 바람이요 - (경아) 바람

 

- (아이4) 아니야, 바다야 - (경아) 또 뭐가 있을까?

 

악마의 불꽃

 

(경아) [웃으며] 아, 악마의 불꽃

 

동그라미는 사실 뭐였을까?

 

[아이들이 저마다 대답한다]

 

이거는 무슨 색?

 

(아이들) 노란색

 

(경아) 이거는? [아이들이 저마다 말한다]

 

그림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아이2) 우주 대폭발

 

(경아) 우진이는? [아이5가 말한다]

 

아, 잘했어요, 박수! [아이들의 박수]

 

엄청 잘했다

 

선생님들은 우리 친구한테 간식 좀 나눠 주세요

 

(아이6) 여기, 여기!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유섭) 들어가!

 

[유섭의 탄성]

 

[아이들과 경아의 탄성]

 

(경아) 일로, 일로!

 

야, 잘 찬다, 우진아, 힘내, 힘내

 

[아련한 음악]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유섭) 관장님!

 

- (유섭) 같이 해요 - (경아) 빨리요, 오세요, 오세요

 

- (아이7) 빨리요, 빨리요! - (유섭) 아, 빨리 오세요, 관장님!

 

[아이들이 재촉한다]

 

(유섭) 오세요, 오세요

 

(신디) 근데 이런 미술 교육은 왜 하는 거예요?

 

그냥 금전적인 지원 하는 게 낫지 않나?

 

미술을 잘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요?

 

그림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요?

 

재수 없는 질문이에요?

 

[부정하는 신음]

 

어, 효진 씨는

 

차시안 씨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어요?

 

어, 당연하죠

 

그럼

 

차시안 씨 모르던 그때로 돌아가라면 돌아갈 수 있어요, 다 잊고?

 

음, 절대 안 되죠

 

왜요, 효진 씨는 차시안 씨 없어도 잘 먹고 좋은 데 다니고

 

즐거운 일도 하고…

 

아, 우리 시안이를 어떻게 잊어요

 

(신디) 모르면 몰랐지 이렇게 심장에 딱 박혀 있는데

 

우리 시안이 덕분에 내가 얼마나 행복해졌는데요

 

[밝은 음악]

 

어, 미술도 그런 거 아닐까?

 

(덕미) 물질적인 도움, 물론 중요하죠

 

미술 없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까

 

근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할 기회를 주고

 

뭔가를 그려 보고 색칠해 가면서 얻는 아름다움을 알게 되는 순간

 

이 친구들의 인생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질 거예요

 

난 그렇게 믿어

 

난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라이언) 어이, 스로인!

 

(덕미)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유섭) 예스!

 

(경아) 친구들 여기 예쁜 선생님 보여요?

 

(아이들) 네!

 

(경아) 우리 지금부터 이 예쁜 선생님의 얼굴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서 작품 전시를 할 거예요

 

그래서 같은 사람을 보고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표현을 하는지

 

다 같이 감상도 해 볼 거예요

 

할 수 있겠어요?

 

(아이들) 네!

 

(경아) 선생님도 도와줄게요 준비, 시작!

 

파이팅

 

(유섭) 관장님

 

관장님도 여자 친구 그리고 싶으시면 여기

 

파이팅

 

(아이2) 선생님, 움직이지 마세요

 

어, 미안

 

[밝은 음악]

 

[카메라 셔터음]

 

똑같죠?

 

[라이언의 고민하는 신음]

 

완전 똑같은데?

 

[웃음]

 

(아이2) 선생님, 움직이지 마세요

 

어, 미안

 

아저씨도 그려 줄까요?

 

어?

 

아저씨?

 

어…

 

- (아이3) 크레파스 주세요 - 네

 

[라이언이 상자를 달칵 연다]

 

눈 조금만 더 크게 그려 주면 안 돼?

 

또 그다음에?

 

이 빨간색으로

 

(경아) 자, 찍어 주세요

 

(신디) 찍을게요, 하나, 둘, 셋

 

찰칵 [카메라 셔터음]

 

아이고, 잘했습니다, 잘했습니다

 

(경아) 잘했어요, 일로 오세요 다음에는 규빈이

 

규빈아, 조금만 더 웃어야지

 

(신디)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경아) 저기 카메라 보세요 예쁜 언니 보세요

 

- (신디) 하나, 둘, 셋 - (경아) 김치

 

(경아) 한 번 더, 한 번 더

 

(신디) 예쁘게 웃어 주세요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신디의 탄성]

 

손 그려 달라고요?

 

 

스케치도 아니고 이렇게 손을 따라서 그려 달라?

 

 

(라이언) 어…

 

나 라이언 골드예요

 

알아요

 

왜요, 난 이게 더 좋은데? 더 귀엽잖아요

 

좋아요

 

[라이언이 색연필 케이스를 북 뜯는다]

 

[라이언의 고민하는 신음]

 

(덕미) 핑크?

 

[쓸쓸한 음악]

 

[무거운 효과음]

 

[한숨]

 

다른 색으로…

 

자, 이렇게

 

[잔잔한 음악]

 

이렇게, 슈욱

 

(덕미) 슈욱, 아, 다 됐다

 

와, 어쩜

 

난 손도 예뻐요, 그렇죠?

 

[웃음]

 

자, 이제 내 거 다 됐으니까 관장님 손

 

제가 그려 드릴게요

 

하늘색, 답은 정해져 있었어요

 

[라이언과 덕미의 웃음]

 

관장님 손 되게 예쁘다

 

[웃음]

 

됐다

 

[덕미의 놀란 신음]

 

예술 작품 같지 않아요?

 

(라이언) 좋은데요?

 

모노 아트 갤러리에 걸어 주세요

 

고민 좀 해 보죠 [덕미의 웃음]

 

(아이3) 아저씨!

 

근데 아저씨 이름 뭐예요?

 

라이언 골드

 

라이언 골드?

 

아, 이상해, 한글 이름은 없어요?

 

[아이3이 스케치북을 탁 내려놓는다]

 

[밝은 음악]

 

[멀어지는 발걸음]

 

좋으시겠네요, 사랑받아서

 

(라이언) 그러게요

 

(아이3) 아저씨, 또 와요

 

안녕히 가세요

 

(교사) 고생하셨습니다

 

(유섭) 가시죠

 

(신디) 나도 좋은 차 타고 갈래요

 

(경아) 저희는 내일 뵐게요

 

- (유섭) 내일 봬요 - (경아) 탔던 데 타요, 탔던 데

 

(경아) 저희 다 가요

 

(덕미) 우리도 갈까요?

 

(신디) 어어, 원래 탔던 데 타라잖아요

 

[유섭의 멋쩍은 신음]

 

(유섭) 네

 

[자동차 경고음]

 

[밝은 음악]

 

[자동차 서랍을 탁 연다]

 

써요

 

[덕미의 놀란 신음]

 

저 이거 쓰면 운전에 집중 못 하실 텐데

 

저 선글라스 되게 잘 어울리거든요

 

어때요?

 

[라이언이 살짝 웃는다]

 

저 근데

 

사실 오늘 안 오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얘기도 안 했던 건데

 

오길 잘한 거 같아요

 

좋은 사람하고 좋은 추억을 만드니까

 

싫었던 곳이 싫지만은 않아져서

 

- 앞에 봐요, 이제 - (덕미) 싫은데요?

 

(라이언) 풍경도 좀 보고

 

(덕미) 난 이쪽 풍경이 더 좋은데?

 

1987년에 제작된 작품입니다

 

갖고 싶어요

 

[함께 웃는다]

 

(아이3) 근데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아, 이상해, 한글 이름은 없어요?

 

[다가오는 발걸음]

 

[아련한 음악]

 

(덕미) 근데 애들이 관장님을 참 좋아하네요?

 

(라이언) 질투?

 

덕미 씨만 갖고 싶어요?

 

지금 와서 하는 얘긴데

 

그때 우리 경매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있잖아요

 

그때 이 말 했을 때 사실 또라이인 줄 알았어요

 

들었습니다

 

[덕미의 웃음]

 

(덕미) 관장님, 근데

 

진짜 한국 이름 기억 안 나요?

 

사실 낯선 사람 이름 같아요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이름이라

 

다른 사람 이름 같아서

 

죄송해요, 제가 괜히…

 

윤제

 

허윤제

 

허윤제?

 

난 그 이름 좋아할래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이니까

 

안녕, 허윤제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예요?

 

내가 잡고 있는 거 아닌데?

 

[옅은 탄성]

 

그럼 내가 놓으면 끝나는 거구나?

 

(라이언) 하나, 둘

 

저녁 먹고 갈래요? 완전 핸드메이드

 

[밝은 음악]

 

반죽을 하려면 일단 밀가루를

 

- (덕미) 보자 - (라이언) 잘된 겁니까?

 

[탄성]

 

숙성은 얼마나 시켜야 됩니까?

 

한 30분? 40분?

 

30분 동안 뭐 해요?

 

뭐 하고 싶은데요?

 

[덕미의 웃음]

 

목이 많이 빨개졌는데

 

[함께 웃는다]

 

이건 관장님 거

 

요만하면 되겠어요?

 

수제비 먹어야 되는데

 

이따 먹죠

 

(함께) 잘 먹겠습니다

 

[덕미가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다]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의미심장한 음악]

 

뭐지?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다]

 

[휴대전화 진동음]

 

(라이언) 잘 자요, 덕미야

 

잘 자요

 

윤제야

 

[차분한 음악]

 

허윤제

 

예쁜 이름인데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는다]

 

[마우스 클릭음]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다]

 

[한숨]

 

[휴대전화 벨 소리]

 

(은기) 여보세요?

 

술 취한 여자…

 

짧은 머리

 

아, 네, 거기가 어디예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 (종업원) 조금만 드세요 - (다인) 네

 

(다인) 어? 구질구질이다

 

내 말 맞죠?

 

(종업원) 어? 진짜네?

 

유도 메달리스트 남은기 선수

 

(다인) 거봐요, 내가 안다고 했잖아요

 

- 이선주라면서요 - (종업원) 제가요?

 

(종업원) 저는 그냥 짧은 머리 취한 여자라고 했는데

 

[종업원이 픽 웃는다]

 

뭡니까?

 

아니, 이분이 남은기 선수 팬이라 그래서

 

(다인) '어, 내가 아는 사람이다' 그랬더니 안 믿잖아요

 

팬입니다, 남은기 선수님

 

(종업원) 아, 아

 

저, 이거, 사인 좀

 

사인 말고 업어 치기 한판은 어때요?

 

아, 그거는 괜찮고요 그냥 사인이면 됩니다

 

[은기의 어이없는 신음]

 

- 여기 - (종업원) 고맙습니다

 

나 짜증 나죠?

 

아는구나

 

(은기) 모를까 봐 말을 해 줄까 말까 되게 망설였네

 

아니, 사실은 내가

 

[헛기침하며] 내가 친구가 없어요

 

(다인) 같이 술 마실 친구가

 

사실 친구가 딱 한 명 있는데

 

아니지

 

친구인 척해야 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제는 친구인 척 만나는 게 힘들어서요

 

[한숨]

 

[은기의 한숨]

 

그럼 우리 친구예요?

 

네, 뭐, 오늘만 해요, 오늘만

 

(은기) 딱 보니까

 

[술을 조르르 따르며] 친구 되면 되게 피곤할 스타일이야

 

사람 잘 보네

 

(다인) [웃으며] 그래서 고백을 했다고요?

 

[은기의 한숨]

 

용감하네

 

난 포기했는데

 

- (은기) 왜요? - (다인) 음…

 

내가 라이언을 10년 동안 봐 왔는데

 

처음 봤거든요, 그런 라이언의 표정

 

아, 진짜 좋아하는구나

 

이게 한눈에 알 만큼

 

(다인) 제가 지금까지 노력하면서 얻지 못하는 게 없었는데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은 딱 하나 남은 것 같아요

 

내 마음 접는 거

 

[잔잔한 음악]

 

라이언이 내 인생에서 친구로라도 남길 바라니까

 

[흥미진진한 음악]

 

(다인) 구질구질!

 

(은기) 네, 구질구질입니다

 

그러니까 집이 어디냐고요

 

뉴욕

 

우리 뉴욕 갈래요?

 

뉴욕, 뉴욕! [은기의 힘겨운 신음]

 

(은기) 미쳤나, 진짜

 

[옅은 한숨]

 

욕먹을 짓 했구나, 나

 

나 어쩜 술도 열심히 마시니

 

주정도 성실하고

 

아, 씨, 미치겠다, 진짜, 씨

 

[다인이 부스럭거린다]

 

(은기) 차렷!

 

사자보다 호랑이가 더 세, 씨

 

[발랄한 음악] [은기가 새근거린다]

 

(은기)

 

(경아) 효진 씨

 

와, 이거 설문지 너무 잘했는데

 

[휴대전화 진동음] 질문이 조금 직접적인 것 같네?

 

- (신디) 어느 부분이요? - (경아) 다

 

네, 교수님

 

[옅은 탄성]

 

아, 복원 끝났다고요?

 

(덕미) 네, 저희 쪽으로 직접 보내 주시면 돼요

 

(양 교수) 아, 성 큐레이터 목소리가 이렇게 밝은 건 처음인데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작품인가?

 

좋은 인연이 있는 작품이죠

 

교수님, 제가 다음 주에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네 [통화 종료음]

 

(경아) 그, 저번에 찾으신 그림 복원 끝난 거예요?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요

 

역시 양 교수님이셔

 

근데 궁금하지 않아요? 작가님 말이에요

 

다 알잖아요, 이솔

 

(경아) 아, 그거 말고요

 

씁, 그, 이번에 도록 준비하면서 자료 서치하는데

 

이 작품이랑 이름 말고는 나와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씁, 이번에 전시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얼마나 궁금해하겠어요?

 

(유섭) 그렇죠, 한류 스타 차시안의 마음을 사로잡은 환상의 작가

 

하, 도대체 누구일지

 

그러게

 

(덕미) 난 관장님한테 복원 끝난 거 알려 드리고 올게

 

관장님 진짜 좋아하시겠어요

 

- 그렇지? - (경아) 응

 

[경아의 웃음] [문이 탁 열린다]

 

[아련한 음악]

 

잘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노크 소리가 들린다]

 

[문이 탁 열린다]

 

(덕미) 관장님, 이솔 작가 작품 복원 끝났답니다

 

언제쯤 볼 수 있죠?

 

방금 배송했대요

 

수장고에 보관하기 전에 먼저 볼 수 있게 말씀드릴게요

 

고마워요

 

[고풍스러운 음악]

 

[늘어지는 효과음]

 

(소혜) [영어] 안녕

 

여러분

 

[소혜의 웃음]

 

- [한국어] 엄 관장님? - (소혜) '노'

 

(소혜) TK문화재단 이사장

 

미스터 골드

 

엄소혜 이사장과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영어] 따라와

 

(라이언) [한국어] 축하드립니다 엄소혜 이사장님

 

우리 미스터 골드와 대화를 하려면

 

권한, 자격 이런 게 좀 필요할 것 같아서요

 

대화를 좀 특이하게 하시나 봅니다, 이사장님

 

[소혜가 호응한다]

 

난 사실 말이 오고 가는 걸 싫어해요

 

(소혜) 말은 그냥 내가 할 테니까

 

미스터 골드는 들어요, 그냥

 

채움 5주년 셀럽 컬렉션전

 

전면 취소 하세요

 

(라이언) 이사장님

 

- (신디) 어머니 - 효진?

 

이거 제가 기획한 굿…

 

(신디) 아니, 아트 상품이에요

 

음, 알았어, 나가 봐

 

(소혜) 그리고 효진

 

효진이는 그런 거나 만들고 있을 사람 아니야

 

우리 효진은 TK물산의…

 

내놓은 자식이니까요

 

[아련한 음악]

 

카드만 쥐여 주면 귀찮게 안 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효진?

 

어머니는 왜 안 물어보세요?

 

(신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왜 궁금해하질 않아요?

 

난 좋아하면 궁금하던데

 

[한숨 쉬며] 효진?

 

내가 우리 효진에 대해서

 

[떨리는 숨소리]

 

모르는 게 있나?

 

이거 제가 만든 거예요

 

성 큐레이터님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맡겨 주시고

 

(신디) 유 큐레이터님이 도와주시고

 

유섭 씨는 응원해 주고 그리고 관장님은…

 

아무튼 나 이 일 계속하고 싶어요

 

차시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고 싶다고요

 

[한숨]

 

아무리 그래도 아이돌은 안 돼

 

[헛웃음]

 

효진, 이게 무슨 뜻이지?

 

특별전 하게 해 주세요

 

나 이 상품 끝까지 만들고 싶어요

 

(신디) 아니면

 

어머니 곁에는

 

아무도 없을 거예요

 

나도

 

[잔잔한 음악]

 

[유섭의 한숨]

 

[경아의 한숨] 이게 무슨 분위기예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분위기죠

 

[문이 달칵 열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유섭의 한숨]

 

특별전 할 수 있는 건가?

 

(김 비서) 관장님, 괜찮으세요? [소혜의 분한 신음]

 

나 지금 너무 속상해

 

[흐느낀다]

 

[문이 탁 열린다]

 

관장님

 

잘될 거 같죠?

 

(덕미) 어머

 

시안이

 

[차분한 음악]

 

(경아) 성 큐레이터님 퇴근 안 하세요?

 

어, 먼저 해

 

(유섭) 관장님은 몇 시에 가실까요?

 

이솔 그림 수장고에 넣어야 되는데

 

아, 그거 내가 할게 유섭 씨도 먼저 퇴근해요

 

그래도 돼요?

 

(경아) 그러면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 고생했어요 - (경아) 네

 

[문이 달칵 열린다]

 

[한숨]

 

(유섭) 한잔 어때요?

 

(신디) 아까 못 봤어요?

 

집에 가서 마지막 전쟁을 치러야죠

 

[한숨] (경아) 효진 씨 진짜 대단해요, 파이팅

 

근데 버스 탈 줄은 알아요?

 

[웃음]

 

가요, 내가 알려 줄게요

 

[못마땅한 신음]

 

[통화 연결음]

 

네, 박 실장님 저 지금 도착해서 가고 있어요

 

시안이는 아직 모르죠?

 

[웃으며] 네

 

밥 생각 없어요

 

(은영) 차시안

 

엄마? [은영의 웃음]

 

밥은 먹고 일해야지

 

(시안) 뭐야,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은영의 달래는 신음]

 

[웃으며] 우리 아들 왜 이렇게 말랐어?

 

언제 왔어? 말했으면 내가 마중 나갔을 텐데

 

너 바쁠까 봐

 

(은영) TV에서는 엄청 멋있어 보이더니 아직도 아기네, 어?

 

우리 차시안이

 

아니지,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 아유, 그랬어? - (시안) 응

 

[아련한 음악]

 

관장님

 

그림 보고 계셨어요?

 

어떤 여자가 힘든 날엔 그림을 보더라고요

 

그래서

 

(덕미) 어떤 여자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특별전 할 수 있게 돼서

 

 

다행입니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궁금한 게 있다는 게, 그게 그…

 

좋아하는 거라던데?

 

[함께 웃는다]

 

이솔 그림, 두 점 가지고 계시잖아요

 

언제 처음 보신 거예요?

 

3년 전

 

뉴욕의 어느 갤러리에서

 

[의미심장한 음악]

 

그때부터였어요

 

그림을 못 그리게 된 게

 

[잔잔한 음악]

 

그림을

 

못 그려요, 나

 

(라이언) 알고 있죠?

 

처음엔 스탕달 신드롬인 줄 알았어요

 

금방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애꿎은 내 의사 친구만 3년을 괴롭혀도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 그래서… - (라이언) 그래서 저 그림으로

 

되돌아간 거죠

 

이솔 그림 때문이었으니까

 

이솔 그림을 모두 모으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아서

 

근데요

 

사실 나 저 그림 본 적 있어요

 

3년 전이 아니라

 

훨씬 옛날에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어렸을 적이면…

 

내가 라이언이기 전

 

내가 허윤제였을 때

 

저 그림을 그리는 걸 본 적 있어요

 

그리는 걸 봤다면

 

이솔 작가님 그림…

 

이솔 작가

 

아마 내가 아는 사람

 

(시안) 엄마, 집에 가서 놀라지 마

 

[웃으며] 엄마 놀래킬 일 있어?

 

나, 전시하려고 그림 모으고 있어

 

그림?

 

엄마가 그린

 

[차분한 음악] 이솔 작품들

 

(라이언) 아마

 

내 어머니

 

신기하죠?

 

그림을 그린 사람 얼굴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그림은 기억난다는 게

 

그래서 그림을 보고…

 

괜찮아요, 나

 

안 괜찮아요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덕미) 여긴 안 괜찮아요

 

괜찮을 수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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