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사생할 14
(덕미) 아니야, 방해하지 말자
전화하겠지
[휴대전화 진동음]
"구독자 메일"
[휴대전화 진동음]
관장님, 만나셨어요?
괜찮아요?
(라이언) 자라니까
늦었는데 왜 안 잤어요?
저 원래 되게 늦게 자는데
올빼미예요, 별명이
(라이언) 우리 서로 속이지 않기로 했는데
이거 진짜예요?
완전 진짜인데
(라이언) 기다릴까 봐 전화한 거예요 얼른 자라고
관장님?
괜찮은 거예요? 지금 어디예요?
(라이언) 늦었잖아요
괜히 전화했다
쉬어요
관장님, 관장님?
[통화 종료음]
[쓸쓸한 음악]
[바람이 솨 분다]
[흐느낀다]
[다가오는 발걸음]
(라이언) 덕미 씨
(덕미) 전화를 그렇게 끊으면 내가 걱정을 해요, 안 해요?
을 거면 내 앞에서 울어야지 위로라도 해 주지
왜 혼자 이러고 있어요, 바보같이
사람 속상하게, 미워, 진짜
웃지 마요, 울 거 같은 얼굴로
울고 싶어요
너무 아프게 때려서
(덕미) 관장님 잠든 거예요?
(라이언) 네
집에 갈까요?
집에 가면 잠이 안 올 거 같아요
기분이 이상해서
왜요?
평생 누굴까 궁금해하던 사람이
내 집 밑에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그럼 우리 집으로 오지
근데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몰랐어요?
저 관장님 몸에 GPS 심어 놨는데
[덕미가 살짝 웃는다]
내가 내 부모님 얘기
입양해 주신 부모님 얘기 한 적 있나?
(라이언) 없죠?
좋은 분들이었어요
[잔잔한 음악] 7살짜리 아이 데려다가
부족함 없이 키워 주셨으니까
부모님이 이런 말씀 해 주신 적이 있어요
'너희 어머니가 널 낳고 키워 주신 건'
'널 사랑해서였어'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우리를 만나게 하신 거야'
'그러니까 넌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지켜진 아이란다'라고요
근데 오늘 만난 그분이
미안하대요, 나한테
[한숨 쉬며] 그래서 난 지켜진 아이가 아니라
다시 버려진 아이가 된 기분이에요
아마
평생 품고 있던 말일 거예요
사랑하는 만큼 함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럴까요?
(덕미) 일단 좀 자 봐요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밝은 음악]
[카드 인식음]
[한숨 쉬며] 김 비서?
우리 효진 지금 버스 타고 가는 거 맞지?
네, 버카충을 배운 거 같습니다 [소혜의 한숨]
버카충?
그건 무슨 벌레야?
버스 카드 충전
울며불며 나한테 전화할 줄 알았는데
(소혜) 버카충을 배웠어?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차 벨이 울린다]
[안내 음성] 이번 정류소는 증산중고교 입구…
오 마이 갓
(라이언) 잘 잤어요?
잘 잤어요?
- (경아) [작은 목소리로] 야! - (신디) 관장님, 성 큐레이터님!
[익살스러운 음악]
- (유섭) 안녕하세요 - (경아) 안녕하세요
(신디) 이런 게 진정한 미술관 사유화 아닌가요?
다들 일찍들 출근하셨네요
- (유섭) 저희 정시 출근… - (경아) 그러게요
(덕미) 어, 그리고 이번에 소파는 안 바꿔도 될 거 같아
아직 쿠션감이
[문이 달칵 닫힌다] - (경아) 눈치, 눈치, 눈치 - (유섭) 효진 씨 뭐 하시는 거예요
(신디) 자, 드세요
못 볼 꼴 보면서 일하는데 배라도 든든해야죠
(경아) 맛있어요?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선주)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남자1) 저기, 빨대 좀 주세요
(선주) 네, 어, 맞는다
여기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여자1) 이거 얼마예요?
(선주) 이거 800원이요
주문받을게요
- (남자2) 아이스라테 두 잔이요 - (선주) 아이스라테 두 잔 [기계 조작음]
카드요, 영수증…
- (남자2) 괜찮아요 - (선주) 네
(승민) 그러니까 선주가 기타도 고쳐 주고
(주혁) 네
공연도 가고?
네
팬클럽도 만들었다?
네
(승민) 그러니까 선주가 널 좋아하는 게 맞…
(선주) 야! 강승민
너 얘한테 뭘 묻고 있는 거야?
- (승민) 아니, 그냥… - (선주) 됐고
(선주) 뭘 묻디?
아니, 사장님이 저 좋아하냐고
[헛웃음]
너 이제 나 의심까지 하냐?
의심이 아니라
(주혁) 근데 사장님이 저 좋아하는 건 사실 아니에요?
내가 좋아하는 건 음악이지
네가 하는 음악
(주혁) 제 말이 맞죠? 나 좋아하는 거
그러네
(선주) 아, 그러네는 뭐가 그러네야!
강승민, 너 혹시…
- (선주) 이게 뭐야? - 프로듀서 하는 내 친구야
(승민) 밴드 하는 친구들 찾고 있다고 해서
주혁이 소개해 주려고
(주혁) 진짜요?
오빠가 왜…
네가 주혁이 좋아하잖아
팬으로
(승민) 그러니까 주혁이가 잘되면
너도 웃을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해서
[밝은 음악]
선주야
나는
네가 웃을 때가 제일 행복해
근데 그걸 잊고 살았어
미안해
나 있지
우리 선주 이제 웃을 일만 만들 거야
예능도 승진도 아니고
오로지 너, 너 웃게 만드는 일
그거만 생각하면서 살 거야 그러니까…
근데 사장님이 저 너무 유명해지는 건 싫다고 하셨는데
(주혁) 나만 아는 밴드이고 싶다고
- (주혁) 빠질까요? - (선주) 아까 빠졌어야지
선주야
- 오빠 - (승민) 어
(선주) 나 오빠 용서하는 거 아니야
그냥 기회 한 번 더 주는 거야
응, 그거면 돼
(승민) 자기야!
아, 이거 놔, 그냥 기회 준 거라고
[승민의 웃음]
(승민) 고마워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네
[잔잔한 음악]
(시안) 처음엔 어디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줄 알았어요
스캔들을 찾는 사람인가 의심도 했었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끌리더라고요
관장님을 알면 알수록 괜히 더 편하고 더 친해지고 싶고
같이 이솔 그림 좋아하는 것도 위층, 아래층 사는 것도
다 운명 같고
결국
제 생각이 맞았네요
형
차시안 씨
엄마 전화번호 형한테 보낼게요
말할 기회를 주세요
사과든 변명이든
엄마한테 말할 기회를
한 번만
성 큐레이터님
저희 다음 주에는 도록 디자인 최종 컨펌을 해야
인쇄 일정을 맞출 수가 있는데요
이솔 작가님 그림 소개는 어떻게 할까요?
유 큐 쪽으로 연락 온 것도 아직 없지?
제 인맥을 총동원해 봤는데 와, 진짜 안 나와요
마지노선이 언제지?
다음 주 수요일이요
그럼 조금만 더 찾아볼까?
네, 저도 빨리 완성된 작품 꼭 보고 싶어요
[경아의 웃음]
(경아) 오케이
[마우스 클릭음]
"이솔 작가 작품과 관련하여 연락드립니다"
[밝은 음악]
[통화 연결음]
[영어] 안녕하세요 채움미술관 성덕미입니다
(덕미) 네, 메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전 경매에 판매되었던
이솔 작가의 비눗방울 그림 연작에 관심이 있어서요
아, 판매자 쪽에서요?
네, 추가 작품 두 점이요
다음 경매에 판매 예정이라고요?
- (경아) [한국어] 두 점이요? - (유섭) 그럼 총 몇 개예요?
(신디) 여덟 개
(덕미) [영어] 사실 그 작품을 저희에게
비공개 판매 해 줬으면 하는데요
물론 감사의 의미로 추가 금액을 지불할 예정입니다
네, 물론이죠,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통화 종료음]
(경아) [한국어] 어떻게 됐어요?
(덕미) 저번에 그림을 내놓았던 컬렉터가 두 점을 추가로 찾았대
우리랑 우선 거래 생각하고 연락 주기로 했어
(경아) 와, 대박, 진짜 잘됐네요
(유섭) 그럼 이제 우리 한 점 남은 거죠?
- (경아) 예스! - (유섭) 예스!
(덕미) 지금 작품 파일 보내 준대
(경아)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마우스 클릭음] (유섭) 됐다
[잔잔한 음악]
[한숨]
[다가오는 발걸음]
똑똑
(라이언) 이미 들어와 놓고 똑똑은 뭡니까?
(덕미) 좋은 소식이 있어서요
이솔 작품 두 점 더 찾았어요
알았어요
관장님, 숨은그림찾기 알죠? 그거 해 볼래요?
네?
따라와 봐요
(덕미) 왜, 영화 보면 이스터 에그처럼 숨겨진 작자의 메시지가 있잖아요
근데 이 그림에도 그게 있더라고요
한번 찾아보세요
[잔잔한 음악]
찾았어요?
(라이언) 이거…
비눗방울, 목마, 관람차, 바이킹
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런 것들이잖아요
(덕미) 난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들을 그렸을지 알 거 같은데
관장님 눈에도 보이죠?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시는 게 어때요?
만나야 할 사람도 있을 거 같은데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분명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채움미술관이랬지
[휴대전화 진동음]
여보세요?
여보세요?
(라이언) 라이언 골드입니다
네
(라이언)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시간 내 주실 수 있을까요?
[문이 달칵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라이언) 차 드릴까요?
아
근데 커피가 없어서
차 주세요, 커피는 못 마셔
(은영) 고마워요, 먼저 전화해 줘서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어할 자격도 염치도 없다는 거 아는데
뻔뻔해야 관장님을 만날 수 있다면
뻔뻔해지려고요
보고 싶었어, 윤제야
(라이언) 전
기억이 없습니다
제 기억 속에 어머니는 뒷모습뿐이에요
그림을 그리고 있는 뒷모습
내 손을 놓고 가던 뒷모습
왜 버렸어요?
미안해요
나 왜 버렸습니까?
버린 게 아니야
(은영) 잠깐, 잠깐일 줄 알았어
너한테 금방 가려고 했는데
아, 이렇게 26년이나 흐를 줄도 모르고
그날
그날 거기를 가질 말았어야 했어
[잔잔한 음악]
(은영) 안 팔리는 그림쟁이한테 갑자기 후원 제의가 들어와서
그냥 돈이 생기니까
내일은 우리 윤제 맛있는 것도 먹이고
우리 윤제가 맨날 노래 부르던 놀이동산도 데려가야지 그렇게
그렇게 널 데리고 나갔어
윤제야, 여기서 잠깐 놀고 있어
엄마 금방 다녀올게
엄마 어디 가는데?
어떤 선생님이 엄마 그림 그리는 거 도와주신다고 해서
그분 만나러 갈 거야
(은영) 근데 좀 무서운 분이래
그래도 같이 갈까?
놀이터에서 잠깐만 놀고 있어
엄마 금방 갔다가 얼른 올게
엄마, 금방 올 거지?
그럼, 금방 올 거야
(은영) 근데 그렇게 널 못 볼 줄은 정말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그날 너한테 돌아가는데
[타이어 마찰음] 사고가 좀 있었어
(여자2) 어머, 이봐요, 어떡해
괜찮아요?
(은영) 조금 큰 사고가
우리 윤제 좀…
(라이언) 그럼 그 사고 때문에
그 사고 때문에 모든 걸 잃었지
가장 소중한 널
정말입니까?
그럼 보육원에 날 버린 게
버린 게 아니야, 윤제야
(은영) 너한텐 변명 같겠지만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후였어
그날 네가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미친 듯이 찾아 헤맸는데 널 찾지 못했어
널 버린 게 아니야, 윤제야, 절대
절대 널 버린 게 아니야
미안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널 놓고 간 거
내가 사고 난 거
널 찾지 못한 거, 다
다 너무 미안해
널 잃고
평생 후회하며 살았어
평생을
[흐느낀다]
너한텐 다 변명 같겠지만
날 미워해도 좋고 원망해도 좋아
그냥 이렇게
네 얼굴만 볼 수 있게 해 주면 안 되겠니?
윤제야
[훌쩍인다]
제가
그만 나가 봐야 돼서, 죄송합니다
왜 다시 들어오셨어요?
[아련한 음악]
잠깐만 이러고 있어도 돼요?
(덕미) 만나셨어요?
무슨 얘기 나눴는지 물어봐도 돼요?
믿고 싶은 말
그런데 믿을 수 없는 말
날 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거라고
그럼
보육원에서의 기억은?
모르겠어요, 내 기억하고 너무 달라서
원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어요
(덕미) 너무 어렸을 때 일이라 기억이 잘못됐을 수도 있어요
우리 기억보단 진심을 믿어 봐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덕미) 평생을 함께한 내 친구 남은기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한숨]
그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휴대전화 진동음]
어
[은기의 거친 숨소리]
(은기) 야, 성덕미, 잠깐 나와 봐
어?
(은기) 아, 집 앞으로
잠깐이면 돼
[통화 종료음]
뭐야
[은기의 거친 숨소리]
(덕미) 야, 너 이 야밤에 그렇게 뛰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바로 객사야
빨리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 뭔데? - 생일 축하한다
곧 생일이잖아
그러기엔 너무 빈손인데?
생일 선물도 있지
나
[웃으며] 뭐야
막 돌아온 성덕미의
(은기) 33년산 베프 남은기
[탄성]
이런 얘기 진짜 쪽팔려서 하기 싫은데
중학교 때 나 운동하기 싫어서 가출했잖아
그때 네가 내 머리채 잡고 끌고 온 거 기억나냐?
야, 넌 뭐 그런 거까지 기억을 하고 있어
그때 내가 너한테 생판 남이라고 했다가
(은기) 먼지 나게 얻어맞았지
가족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고
그럼
그때 진짜 눈물 나게 아팠는데 웃음이 나더라
네가 가족이라고 얘기해 줘서
그게 너무너무 고마워서
(은기) 그냥 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고 오래오래 이렇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살짝 웃는다]
그러다 네가 좋아졌어
그건 진심이야
그러다 너랑 떨어져 지내니까 알겠더라고
난 그냥
네가 웃는 게 좋아
[아련한 음악]
옆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더라도
덕질을 하든
다른 사람이 옆에 있든
네가 행복하고 웃고 있으면
그게 제일 좋은 거더라고
이 정도면 가족인 거지?
[힘주는 신음]
씩씩하고 웃는 얼굴이 진짜진짜 예쁜 내 친구 성덕미
그동안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미안해, 정말
그럼 이제 성덕미 친구로 받아 주는 거지?
[심호흡]
(덕미) 남은기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돌아와 줘서 고마워
[웃음]
그래도 생, 생일 선물은 줘야지
가져왔잖아, 나
[웃으며] 너 가지고 얻다 써먹어
사자보다 호랑이가 더 세다?
(덕미) 미쳤어? 사자 데리고 온다?
- (은기) 데리고 와 - (덕미) 자신 있냐?
- (은기) 업어 치기 한판 한다, 내가 - (덕미) 미친 거 아니야?
[시안의 힘주는 신음]
어때? 일하는 남자의 뒷모습
멋있어?
[웃으며] 엄청 멋있는데?
시안아
엄마가
할 얘기가 아주 많아
혹시 형한테 연락 왔어?
형이 엄마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겠어
나 알아
아주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어
(시안) 엄마한테 큰 아픈 일이 있었고
나한테 형이 있었다는 거
[잔잔한 음악] 근데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엄마한텐 너무 아픈 일이니까
기다렸어
(시안) 나한테 기대고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클 때까지
우리 시안이 아기인 줄 알았더니
고맙다, 시안아
형이랑은 얘기 잘했어?
[한숨]
잘 안됐구나?
용서할 수 없는 일이잖아
엄마
(은영) 응
우리 엄마 그림 다 보여 주자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왜?
그 그림들 때문에
생긴 일이야
너무 잔인하잖아
누구보다 그 그림을 봐야 할 사람은 형이야
(시안) 꼭 봐야 돼
형 본인을 위해서라도
엄마
잠깐만
[문이 달칵 열린다]
[휴대전화 진동음]
[덕미의 놀란 신음]
[헛기침]
네, 차시안 씨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이솔 작가 그림 두 점 추가로 찾았어요
구매 의사도 전달해 놨고요
다시 연락 오면 알려 드릴게요
네, 그럼 이제 한 점만 더 찾으면 되는 건가요?
네, 지금 열심히 찾고 있으니까 아마…
(시안) 그러실 필요 없어요
왜요?
(시안) 나머지 한 점을 누가 갖고 있는지 제가 알아요
그 마지막 한 점을 형이 꼭 봤으면 좋겠는데
누나가 설득 좀 해 주시겠어요?
[당황한 신음]
[버스 문이 탁 열린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이렇게 먼 거리를
(소혜) 걸어서 간다? 우리 효진이?
김 비서, 이 동네 치안이 어떤지 좀 봐줘
엄마!
[흥미진진한 음악]
(신디) 어, 엄마, 뭐 사 오셨어요?
(영숙) 잡채거리랑 오징어
오징엇국 좋아해요?
[근호의 웃음] 네, 엄마가 해 주시는 건 다 좋아요
[영숙과 근호의 웃음]
(신디) 가요
- (소혜) 김 비서 - (김 비서) 네, 이사장님
(소혜) 방금 효진이 엄마라고 하는 거 들었어?
예
어떻게 생각해?
(소혜) 팔짱은 왜 끼지?
어떻게 생각해!
딸, 딸 뺏기신 거 같습니다
오 마이 갓!
[휴대전화 벨 소리]
[휴대전화 조작음]
네, 덕미 씨
(덕미) 관장님 주소 하나 찍어 드릴게요
거기로 오세요
- 네? - (덕미) 갑자기 연락을 받아서요
(덕미) 이솔 그림 소장자가 그림을 보여 주겠다고 해서
마지막 그림이에요
얼른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통화 종료음]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차 문이 탁 여닫힌다]
그림이 여기 있어요?
네, 소장자가 성당에 맡겨 놨대요
그래서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요
(시안) 왔어요?
덕미 씨
사실은…
누나는 아무 잘못 없어요
제가 형 데리고 와 달라고 부탁한 거니까
[잔잔한 음악]
엄마도 몰랐어요
형이 오는 거
모르고 오게 해서 미안해요
(은영) 불편하게 한 거면 그냥 돌아가도 괜찮아요
엄마
관장님
허윤제로서 보기 힘들면
관장님으로 여길 왔다고 생각해 주세요
(덕미) 우린 전시를 해야 하고
그러려면 봐야 하잖아요, 작품을
마지막 그림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이솔 작가님
이 아이를 지켜 주십시오
기도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맡겼어요
(은영) 기억 안 나죠?
윤제예요
허윤제
[잔잔한 음악]
엄마
(어린 라이언) 배고파
엄마, 엄마
엄마
(어린 라이언) 엄마, 배고파
엄마
우리 윤제 뭐 먹고 싶어?
- 된장국 - (은영) 응?
(어린 라이언) 된장국
엄마, 이거 나 그린 거야?
[함께 웃는다]
웃고 있네요
우리 둘 다
아주 행복하게
[탄성]
[어린 라이언이 비눗방울을 후 분다]
[문이 탁 닫힌다] 엄마, 이거 봐요!
엄마, 봤어요?
(어린 라이언) 우아, 예쁘다
(덕미) 근데 차시안 씨는 괜찮아요?
많이 놀랐을 텐데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오래 기다렸어요, 오늘을
(시안) 엄마 그림도 다 찾았고
그 그림으로 엄마가 잃어버린 아이
형도 찾았으니까
혹시 천사세요?
아유, 종종 듣기는 하는데
[덕미의 웃음]
(시안) 다 누나 덕분이죠, 감사해요
아니에요
(덕미) 작가님,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채움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성덕미입니다
이 시간에 무슨 일로?
마지막 작품의 소재지를 알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저는 작품의 공개는…
(덕미) 일단 이걸 한번 봐 주시겠어요?
(덕미) 연작의 조각들만 보고는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마지막 작품까지 걸리면
이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거예요
이 그림이 담고 있는 그 마음
한 아이를 향한 그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요
[아련한 음악]
전 그 감정을 관장님께 꼭 보여 드리고 싶어요
큐레이터로서 그리고
제게 너무 소중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요
우리 윤제를…
(덕미)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에요
작가님의 작품
이솔 작가의 데뷔전을 꼭 채움에서 함께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시안) 그, 혹시
제가 물어볼까 말까 했는데
뭔데요?
(시안)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덕미) 왜요, 물어보세요
아, 혹시 제 팬이세요?
팬이요?
[웃으며] 좋아하면 다 팬 그런 거 아닌가요?
- 아, 그렇죠? - 네, 화이트오션 노래 좋아해요
아, 감사합니다, 네
(시안) 아, 저 이번에 노래 나오는데
장르가 뭐예요?
- 장르가 힙합 베이스에 - (덕미) 아, 네
(덕미) 좀 더 어쿠스틱한 느낌도 들고
[잔잔한 음악]
(덕미) 이솔 작가님의 마지막 그림까지 다 보셨네요
어떠셨어요?
그림을 보고 느껴졌어요
날 사랑하셨고
지켜 주셨다고
난 지켜진 아이다?
더 많이 느끼고 와요
오늘은 제가 어머님한테 양보해 드릴게요
가요
(경아) 성 큐레이터님
방금 중국 딜러한테 연락이 왔는데요
소장자가 이솔 그림 판매하겠다고 했대요
정말?
와, 그럼 이번에 아홉 점 다 전시할 수 있겠다
마지막 한 점도 찾았어요?
[유섭이 전화기를 탁 내려놓는다] (유섭) 작품 배송도 다음 주면 시작이래요
성 큐레이터님, 유 큐레이터님 파이팅!
(신디) 아트 상품도 99% 완료
이제 진열만 하면 돼요
자, 이제 전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우리 모두 힘내요
(유섭) 네!
[흥미진진한 음악] (신디) 아, 왜 말 안 했어요 작품의 날이 이런 거라는 걸
(경아) 까먹어서요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걸
(유섭) 왜 매번 까먹을까요?
(덕미) 그래야 다음에 또 하지
(유섭) 아, 근데 아무리 전시 준비 바빠도
이런 날은 회식도 좀 하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신디) 저 이제 엄마 카드 없어요
[유섭의 한숨] (경아) 성 큐레이터님 남친분께서 좀 쏘시면 어떨까요?
(덕미) 내 남자 친구?
그럼 오늘 남친 찬스 좀 써 볼까?
[경아의 탄성] 옷들 갈아입어
[신디와 경아의 탄성] (유섭) 콜!
(다인) 그러니까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이
여기랑 여기뿐이라는 거야?
처음하고 얘기가 다르잖아
처음보다 작품 수도 많아졌고
(라이언) 다들 전시 공간에 욕심낼 수밖에 없잖아
네가 이해 좀 해 줘라, 최 작가, 응?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최 작가님
안녕하세요
아, 두 분 아직 회의 중이시면 좀 있다 들어올까요?
끝났어요
끝났지?
끝내라고 하니까 끝내야겠지?
(다인) 나도 약속 있어, 친구랑
(라이언) 친구?
너 한국에 친구가 있어?
성덕미 씨 덕분에
(다인) 나 갈게
고생해요
(덕미) 내 덕분에?
(라이언) 무슨 일이에요?
아, 오늘 돈 좀 쓰셔야겠어요
(덕미) 아, 직원들이 전시가 다가오니까
너무 피곤해해서요
회식 쏘시면 좋을 거 같아요
좋아요
아, 저번에 그 막걸릿집 어때요?
막걸릿집 안 돼요
[흥미진진한 음악] 왜요?
관장님 진짜 무거워요
오늘은 나 안 취할 건데
[덕미의 웃음]
(덕미) 잘도 그러시겠다
'잘도 그러시겠다'?
긍정, 긍정인데 뭐가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한국어 공부 더 하셔야겠어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주혁, 너 앨범 낸다며?
앨범 나오면 사인해 드릴게요, 형
[피식 웃는다]
(은기) 진짜 성덕은 너 같다, 이선주?
카페 알바생 덕질하다가 앨범도 내주고
자고로 덕후란 안목이 탁월해야 되거든
(선주) 내가 잠시 덕질을 쉬었지만
그 안목이 어디 가겠니?
아, 그래서 승민이 형이랑 결혼을…
(선주) 야!
너 지금 우리 승민이 까는 거야?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싸울 땐 언제고
(선주) 까도 내가 까
(다인) 안녕?
안녕하세요
누구…
세요?
아, 저번에 여기서
[은기가 혀를 쯧쯧 찬다]
초면이야
네가 모르는 사람, 응
[당황한 신음]
근데 왜 보자고 한 겁니까?
전시 설치 시작하면 못 노니까
(다인) 바빠지기 전에 한잔해야죠
- 대신 - 1차까지만
저 잠깐 화장실 좀
(선주) 어, 덕미야
선주야, 저녁에 너한테 못 갈 거 같아서
(덕미) 우리 오늘 회식이라
오늘 내 친구들은 다 약속 있네
은기도 약속 있대?
은기가 새 친구가 생겼어
친구 아니야
새 친구?
응, 되게 친해 보이는데?
친구 아니라니까?
그래서 너 오늘 뭐 먹을 거야?
아마 막걸리가 아닐까 싶다
(덕미) 우리 허윤제 님께서 엄청 좋아하시거든
허윤제?
우리 관장님 한국 이름 허윤제
이름도 예쁘지?
그럼 선주야, 내일 보자
[통화 종료음]
아, 덕미 얼굴 보기 어렵네
[선주가 휴대전화를 탁 내려놓는다]
선주야
허윤제가 누구야?
왜 갑자기 덕미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와?
관장님 한국 이름이래
라, 라이언 관장님?
응, 입양 가기 전 이름 알았나 봐
[문이 달칵 여닫힌다]
(다인) 가요, 술 마시러
오늘은 안 될 거 같아요
아, 다음에 마셔요
에이, 다음이 어디 있어
나 이제 바쁘다니까?
다음엔 3차까지 마실게요 급한 일이 생겨서
- (은기) 나 갈게 - (선주) 가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다인의 한숨]
괜찮으시면 저랑 낮술이라도
아니요
불편하시죠?
네
[문이 달칵 닫힌다]
[잔잔한 음악]
- 엄마 - (영숙) 응
있잖아
어
저기…
아, 뭐?
그 애 있잖아
그 애?
어
그 애 이름이 뭐였더라?
[아련한 음악]
아니,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아, 그러게
아니에요, 식사하세요
(은기) 아, 내가 갑자기 그걸 왜 물어봤지?
드세요
[근호의 헛기침]
(근호) 밥 먹어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유섭) 특별전을 위해서…
(경아) 아, 저, 근데 내일 성 큐레이터님 생일 아니에요?
(라이언) 맞을걸요?
(유섭) 내일 두 분이서 보내시고 오늘은 다 같이 축하하시죠, 네?
(경아) 아, 근데 케이크는 어떻게 하지?
(신디) 제가 주문하고 있습니다
금방 도착한대요
감사합니다
(함께) ♪ 생일 축하합니다 ♪
♪ 생일 축하합니다 ♪
♪ 사랑하는 성 큐님 ♪
♪ 생일 축하합니다 ♪
[유섭의 환호]
다들 고마워요
(경아) 음, 케이크가 진짜 맛있네요
(유섭) 응
건배!
[덕미가 컵을 탁 내려놓는다]
(유섭) 에이, 뭐 하시는 거예요?
또 관리하시는 거예요?
관장님은 오늘 술 한 방울도 안 드실 거야
저 마실 건데
안 돼요, 관장님은
(신디) 관장님, 보약 드세요?
- 아니요 - (신디) 근데 왜요?
관장님은 오늘 밤에 할 일이 있으셔
무슨 일?
있어요, 저랑 같이 할 일
- (신디) 아, 진짜 TMI - (경아) 응, 응
(신디) 그래서 둘이 진짜로 사귈 거예요, 안 사귈 거예요?
(경아) 뭐가요? 누가요, 우리가… 우리요?
참, 절, 절대 그럴 일은 없거든요
사람 앞날 모르는 거 아닌가? 뭐, 절대까지
(경아) 여보세요
우리 이 정도 앞날은 알고 가시죠
- (경아) 뭐죠? - 제 마음도 알고 가시라고요
(신디) 아, 진짜 사귀지 마요!
내가 진짜 이, 이 두 명 사귀는 것도 완전 시한폭탄인데
여기까지, 진짜 짜증 나거든요
- (유섭) 알았어요, 알았어요 - (경아) 너무 걱정하지 마
(라이언) 2차 하고 가요
관장님, 3차까지는 안 되겠습니까?
4차까지 하고 가요
정말 감사합니다
- (경아) 들어가세요 - (유섭) 들어가세요
(경아) 좋은 시간
우리 오늘 뭐 할 건데요?
술도 못 마시게 하고
음, 일단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와요 기다릴게요
[문이 달칵 여닫힌다]
[잔잔한 음악]
[한숨]
덕미 씨
[문이 달칵 열린다]
(덕미) 관장님
[밝은 음악]
[살짝 웃는다]
덕미 씨, 이건…
저 내일 생일이잖아요
생일 선물 받고 싶어요
저 그려 주세요
덕미 씨, 알잖아요
나 그림 못 그리는 거
할 수 있어요
저번에도 제 손 그려 주셨잖아요
그때랑 똑같아요
(덕미) 제가
옆선이 장난 아니거든요?
근데 목선은 더 장난 아니에요
[잔잔한 음악]
어때요, 막 그리고 싶어지죠?
그냥 따라 그리면 돼요
예쁘네요
라이언 골드 작가님
[잔잔한 음악]
사랑해요
사랑해요
[차분한 음악]
(어린 덕미) 내가 술래야
우리가 도망가자!
메롱, 메롱
나는 성덕미고 일곱 살이야
(어린 덕미) 넌 이름이 뭐야?
(어린 라이언) 나는 허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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