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서가 왜 그럴까 11
어떻게 여기…
내 기억이 잘못된 거라는데
네 생각도 그래?
대답 못 할 정도로
곤란한 질문인가?
(마술사) 자, 그럼 오늘 매직 쇼를 빛내 주실 특별한 게스트
모델 김나연 씨를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성]
[또각또각 소리가 울린다] [긴장되는 음악]
(성연) 그건
내 기억이 잘못됐다는 뜻이야?
[음산한 효과음]
[놀라는 숨소리]
나 종종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린 시절 꿈들을 꿨어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꿈속의 기억에…
(여자) 아빠는 회사 가셨잖아
무슨 헛소리를 계속하는 거야!
[미소의 떨리는 숨소리] (어린 미소) 이모가 이상해졌어, 오빠
[미소의 겁에 질린 숨소리] (어린 영준) 아니야, 미소야, 저건 이모가 아니야
거미야, 커다란 거미
(어린 미소) [울먹이며] 오빠, 나 무서워
(어린 영준) 미소야, 거기 있어, 여기 오지 마
(어린 미소) [울먹이며] 안 돼, 오빠, 미소만 두고 가지 마
바보야, 오지 말라고!
[떨리는 숨소리]
기억 났어
[가쁜 숨소리]
[무거운 음악]
(성연) 미소야, 미소야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미소야, 정신 차려, 미소야!
김미소!
[영준의 다급한 신음]
(영준) 김 비서, 정신 차려
김미소
김미소!
(어린 미소) 엄마
엄마!
[어두운 음악]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음산한 효과음]
엄마?
(어린 미소) 엄마!
엄마 아니네?
얘, 너 엄마 찾니?
응
이모가 엄마한테 데려다줄까?
정말? 우리 엄마 병원에 있는데
찾으러 갈 수 있어?
그럼, 이모가 데려다주면 되지
가자
[음산한 효과음]
[끼익 소리가 들린다]
[구두가 또각거린다] [음산한 효과음]
(어린 미소) 이모, 여기서 하룻밤만 자면
진짜 엄마한테 데려다줄 거야?
이모, 이모, 나도 저 오빠랑 똑같은 팔찌 해 줘
[무거운 음악]
[떨리는 숨소리]
(어린 영준) 성현, 이성현
성연? [미소의 웃음]
성현이라고
성연, 성연 오빠야
(어린 영준) 너 진짜 바보구나?
(어린 미소) 바보 아니야
미소 다섯 살인데 말희 언니보다 책도 잘 읽어
[헛웃음]
근데 오빠, 죽는 게 뭐야?
아빠가 그러는데 엄마가 아파서 죽을지도 모른대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나도 몰라
- (어린 미소) 오빠는 바보야? - (어린 영준) 뭐?
(어린 미소) 필남이 언니는 엄마가 죽으면
이제 엄마를 못 만나는 거라고 했는데
오빠는 아홉 살이면서 그것도 몰라?
바보네, 바보야
누구보고 바보래
죽으면 못 만나는 게 당연하지, 바보야
[애잔한 음악]
[울먹이며] 그러면 미소도 이제 엄마 못 만나
아, 아니
자, 잠깐만, 그, 그게 아니라… [미소가 으앙 운다]
(어린 영준) 쉿, 알았으니까 조용히 해, 응?
[다가오는 발걸음] [긴장되는 음악]
(여자) 조용히 해야지?
곧 아빠 오실 시간이잖니
(어린 영준) 죄송해요, 조용히 있을게요
(어린 미소) 아빠?
우리 아빠는 지금 병원에 있는데
아빠는 회사 가셨잖아
곧 오실 테니 엄마랑 얌전히 기다려야지?
우리 엄마도 지금 병원에…
미소야, 쉿
무슨 헛소리를 계속하는 거야!
아,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런가 봐요, 엄마
(어린 영준) 제, 제가 달랠 테니까 걱정 마세요
조용히 있을게요
[안도의 한숨]
오빠, 이모가 이상해
[울먹이며] 나 집에 갈래
[한숨 쉬며] 미소야, 그만 울어
뚝 하면 맛있는 거 줄게
- (어린 미소) 맛있는 거? - (어린 영준) 응
자, 여기 캐러멜
먹고 울지 않기다? 약속해
맛있어?
맛있게 먹어
[어린 영준의 놀라는 숨소리] [음산한 음악]
아줌…
엄마
쉿
동생이 자고 있잖니, 조용히 해야지
(어린 영준) 네, 엄마
아빠 오실 때까지 이대로 조용히 있을게요
아니
아빠는 안 오실 거야, 왜냐하면
난 네 엄마가 아니니까
[긴장되는 효과음]
난 그 사람한테 모든 걸 다 줬는데
[떨리는 숨소리]
그 사람은 아니더라?
그 사람 때문에 내 배 속의 아이까지 지웠는데
[겁먹은 숨소리]
지금쯤 그 사람
너희 같은 아들딸과 함께 편안히 잠을 자고 있겠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거야, 왜!
난 그 사람 사랑한 죄밖에 없는데
[허탈한 숨소리] 내가 죽으면
그 사람, 조금은 죄책감을 가질까?
같이 가자
[놀라는 숨소리]
혼자 가긴 싫어
(여자) 너희가 같이 가 줘
(어린 영준) 그런 비겁하고 못된 아저씨는 잊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요!
지금이라도 그만둬요
저희 풀어 주세요
절대 신고 안 할게요, 네?
[무거운 음악]
늦었어
너무 멀리 와 버렸어
[떨리는 숨소리]
위로 고마웠다, 꼬마야
[음산한 효과음]
[또각또각 소리가 들린다]
(어린 영준) 안 돼요
[울먹이며] 안 돼요, 아줌마
그러지 마요, 제발!
도와주세요 [어린 영준의 울음]
너한테 신세만 지고 가는구나
안 돼
미안해
그러지 마세요, 제발!
(여자) 그이 대신
네가 내 마지막을 봐 줘
(어린 영준) 누가 좀, 누가 좀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안 돼!
[흐느낀다]
[몽환적인 음악] [어린 영준이 흐느낀다]
왜…
[어린 미소의 의아한 신음]
(어린 미소) 오빠, 거기서 뭐 해?
(어린 영준) 미소야, 거기 있어, 여기 오지 마
(어린 미소) 어? 저게 뭐지?
이모?
이모가 이상해졌어, 오빠
무서워
(어린 영준) 엄마가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미소한테
죽음을 이렇게 알려 주면 안 돼
아니야, 미소야
저, 저건 이모가 아니야
(어린 영준) 저건
거미야, 커다란 거미
[울음]
거미 무서워
[미소가 엉엉 운다]
(어린 미소) 엄마
[잔잔한 음악]
괜찮아, 미소야 거미 안 오니까 울지 마
어, 근데 오빠, 미소 발
(어린 미소) 발이 너무 많이 아파
오빠가 밖에서 가위 가져와서 이거 풀어 줄게
[삐거덕 소리가 들린다]
[겁먹은 숨소리]
(어린 영준) 여기 있다
죽은 그 여자가 이 위에 있다
[흐느낀다]
아, 미소야
미소야, 너 거기 있지?
(어린 미소) 오빠, 오빠 왜 울어?
거미한테 물린 거 아니야?
어떡해
오빠 괜찮아
미소가 여기 있어 저 안에 미소가 같이 있어
(어린 영준) 미소야, 잘 들어
응
아프리카엔 어른 키만큼 커다란 거미가 산대
아주 사나워서 사람이랑 눈이 마주치면 확 물어 버린대
- (어린 미소) 진짜? - (어린 영준) 응
[차분한 음악] 밖에 그 거미가 있는 거 같아
눈 꼭 감고 절대로 보면 안 돼, 알았지?
응
이제 집에 가자 오빠 손 꼭 잡고 따라와
(어린 미소) 응, 오빠
여기야, 우리 집
(어린 영준) 정말 바로 근처네?
앞으로는 자다 깨도 밖에 혼자 나오면 안 돼
알았지?
응, 저기, 근데 오빠, 있잖아
미소 오빠랑 결혼할래
겨, 겨, 결혼?
응, 오빠 왕자님 같아
[옅은 웃음]
근데 오빠야, 돈도 많아?
- (어린 영준) 돈? - (어린 미소) 응
(어린 미소) 아빠가 꼭 부자랑 결혼하라고 미소한테 그랬어
뭐, 우리 아빠가 돈 많은 거니까
나도 많은 거긴 하지
얼마나 많은데? 나나의 스위트 홈 살 수 있어?
나나 인형?
유명실업에서 나온…
유명실업은 우리 회사 자회사잖아
(어린 미소) 자회사? 그게 뭐야, 먹는 거야?
나나의 스위트 홈 만드는 공장이 다 우리 거라고
빨리 약속해, 미소랑 결혼하기
안 돼
(어린 미소) 아, 왜
(어린 영준) 결혼은 어른 돼서 사랑하는 사람하고 하는 거니까
그럼 어른 돼서 미소랑 사랑하는 사람 하면 되잖아
[한숨 쉬며] 알았어, 하자, 해
[웃음]
약속
(어린 영준) 다음에 오빠가 미소 보러 다시 올게
(영준)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잔잔한 음악]
[음산한 효과음]
[긴박한 음악]
[가쁜 숨소리]
[떨리는 신음]
[놀라는 숨소리]
(젊은 최 여사) 서, 성현아
- (젊은 최 여사) 성현아 - (젊은 이 회장) 성현아
성현아, 괜찮니? [어두운 음악]
(젊은 최 여사) 성현아
[음산한 효과음] (여자) 같이 가자
이리 와, 이리 와 [어린 영준이 흐느낀다]
(어린 영준) 이러지 마!
[놀라는 신음]
[울며] 엄마, 아니야, 아니야
- (젊은 이 회장) 성현아, 왜 그래! - (젊은 최 여사) 왜 그래, 왜 그래
- (젊은 이 회장) 성현아! - (젊은 최 여사) 얘가 왜 이래! [어린 영준이 울부짖는다]
(젊은 이 회장) 저기, 의사 선생님 불러 주세요!
[어린 영준이 악쓴다]
(젊은 최 여사) 아니야, 아니야, 성현아
(영준)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긴 힘들었다
[잔잔한 음악]
그럴 때마다 너는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고
(어린 영준) 나
그 동네에 다시 가 보고 싶어요
잠깐만 보고 오면 안 돼요?
(영준) 다시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공사장 소음]
(젊은 최 여사)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했잖아
(어린 영준) 다시 보러 온다고 약속했는데
[한숨]
(직원들) 안녕하세요, 전무님
(영준) 그 후로
그 여자와 비슷한 젊은 여자는 마주하기 힘들어하거나
[영준의 가쁜 숨소리] (직원1) 전부 다 수거했습니다, 전무님
(영준) 케이블 타이를 보면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견딜 만했다
[떨리는 숨소리]
다만 문득 한 번씩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직원들이 시끌벅적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직원들) 위하여!
(영준) 꿈처럼 너를 다시 만나게 됐지
이름이 뭡니까?
아, 김미소입니다
- (영준) 김미소 씨 - (미소) 네
내가 누군지 압니까?
네, 회장님 아들요
혹시 아니신가요?
아니, 맞습니다 [미소의 탄성]
- (직원2) 미소 씨, 짠 - (미소) 네, 네, 네
(미소) 열심히 하겠습니다
(영준)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어
그날의 기억을 평생 짊어지고 가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하니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문이 달칵 열린다]
(미소) 안녕하십니까, 전무님
[미소의 당황한 신음]
오늘부터 수행 비서로 정식 출근 하게 된 김미소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영준) 무슨 생각이었을까
너를
내 곁에 두고 싶어 했던 건
[전화벨이 울린다]
네, 유명그룹 총무부입니다
(남자) [일본어] 낫산자동차의 하야시라고 합니다
확인할 사항이 있어서요
[영어] 정말 죄송합니다 영어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직원3) [한국어] 뭐 해요?
(미소) 아, 아무도 안 계셔서 전화를 받았는데 일본 분이신가 봐요
제가 일본어를 못 해서…
(직원3) [한숨 쉬며] 이리 줘 봐요
(미소) 네
(직원3) [일본어] 전화 바꿨습니다
지금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서요
[쓱쓱 메모하며] 네,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직원3이 수화기를 달그락 놓는다]
[한국어] 감사합니다
(직원3) 아니, 전무님 비서라는 사람이
이 정도 실력도 안 되는 거예요?
아휴, 고졸이라서 그런가
(미소) 언니?
나?
잘 지내지
언니, 근데
여기 똑똑한 사람들 엄청 많다
(미소) 해외 바이어들 상대할 일 많은데
그때마다 나만 맨날 못 알아들어
[훌쩍인다] [잔잔한 음악]
아니야, 나 괜찮아
알잖아, 나 적응력 빠른 거
잘할 수 있어
[훌쩍이며] 언니
나 들어가 봐야겠다, 끊을게
[한숨]
[미소의 한숨]
하루에 30페이지씩 마스터해 오도록
(영준) 내가 직접 매일매일 테스트할 예정이니
매일매일 테스트요?
[문이 탁 닫힌다]
[일본어] 오늘 날씨는 어떻습니까?
오늘 날씨는…
죄송합니다
앞으로의 포부를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전무님을 완벽히 보좌하고…
'스미마센'
(영준) [한국어] '스미마센'밖에 할 줄 모르나?
외운다, 기억한다
씁, 이게 대체 왜 안 되는 거지?
[문이 달칵 여닫힌다]
[한숨]
[한숨]
[씩씩거린다]
내가 기필코 일본어 마스터해서 이 수모 갚아 주고 만다
[일본어]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죠?
오전엔 임원진 회의가 있고
오후에는 경제인 포럼에 참여하셔야 합니다
(영준) [한국어] 아
여기 선물
선물요?
단기간에 실력이 훅 늘었기 때문에 주는 선물이야
(영준) 보상이 있어야 성과도 따르는 법이지
나한테 선물받은 최초의 직원이니까
그 영광스러운 마음 오래도록 간직하도록
네! [웃음]
[강조되는 효과음]
잘할 수 있어
[인터폰 작동음] (영준) 김 비서
[인터폰 작동음] 김 비서
김 비서…
[옅은 웃음]
죄송합니다, 전무님
3일 동안 밤을 새웠으니 피곤할 만하지
이만 들어가
아닙니다, 저 자료 정리해서 내일까지 보내 주기로 했어요
그 일정
딜레이됐어
네?
전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방금 연락 왔어
그럼 퇴근하는 걸로
아…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반가운 숨소리]
[통화 연결음]
(영준) 예, 박 부장님
백화점 인수 건 말입니다
일정 딜레이시켜 주시죠
[잔잔한 음악]
[통화 종료음] [한숨]
사장님으로 승진하신 기념 선물이에요
얼른 열어 보세요, 전무…
아니, 사장님
[옅은 웃음]
사장님께선 딱히 필요하신 것도 없는 거 같고
(미소) 필요한 게 있다고 해도 다 비싼 거일 테니까
저는 성의를 한번 어필해 보고자 만들어 봤어요
[피식한다]
별로 내 취향은 아니군
그럼 돌려주세요
(영준) 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
성의를 생각해서 기꺼이 받아 주지
[어색한 웃음]
감사합니다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문이 달칵 여닫힌다]
성의를 생각해서 일주일만 해 주지
와, 감사해요
(미소) 저 이렇게 예쁜 케이크 처음 받아 봐요
별거 아니야
유명 파티시에한테 특별히 부탁한 거긴 하지만
뭐, 별로 비싼 것도 아니고
저 인증 숏 찍어도 돼요?
물론이지
[기쁨에 찬 신음]
[미소의 놀라는 탄성]
[미소의 당황한 숨소리]
[어색한 웃음]
떨어졌네?
[미소의 속상한 신음]
(미소) 아, 어떡해, 이거
죄송합니다, 사장님
됐어, 별거 아니야
그러니까 생일날 그런 표정 짓지 마
(영준) 그렇게 계속
예쁘게 떨어졌네
(영준) 함께일 줄만 알았는데
부회장님 새 비서 구하셔야겠어요
저 이제 그만두려고요
(영준) 그때 처음 깨달았지
나는 널 절대 놓을 수 없다는 걸
난
처음부터 너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 김미소
[문이 드르륵 열린다]
[영준의 성난 숨소리]
(영준) 미소한테 뭐라 그랬어?
뭐라고 했길래 갑자기 쓰러진 거야?
또 그 얘기 했지?
대체 언제까지 그 얘기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건데, 어?
거기 갇혀 있었던 거
내가 아니라
너였지?
[무거운 음악]
뭐?
(성연) 너
그때 일 다 기억하지?
맞나 보네
당황하는 거 보니
그래, 그동안 이상했어
이해가 안 됐거든
괴로워하는 나를 보면서도
죄책감 하나 없었던 네가
내가 아니라
네가 갇혀서였구나
(영준) 일어났나?
좀 어때?
마실 것 좀 가져오지
아무래도 김지아 비서한테 일을 좀 더 넘겨야겠어
[컵을 달그락거리며] 김 비서, 과로인 것 같군
부회장님
기억 잃은 거 아니죠?
그냥 잃은 척하는 거죠?
(영준)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군
성현 오빠
[차분한 음악]
나 다 기억났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날 있었던 일
그 여자까지
[미소의 떨리는 숨소리]
그리고 이제야 알겠어요
왜 그렇게 오빠를 찾고 싶어 했는지
고마웠다고
그날 오빠도 많이 무섭고 힘들었을 텐데
나 지켜 줘서 고맙다고
그 말을 전하고 싶었나 봐요
나 아니면 누가 그렇게 김 비서를 지켜 줄 수 있었겠어?
이영준이니까 가능한 일이었지
끝까지 숨길 수 있었는데 실패했군
[기가 찬 숨소리]
[미소가 흐느낀다]
(영준) 울지 마, 안정 취해야 돼
지금 안정을 취하게 생겼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아니, 왜 그렇게 오랫동안 비밀로 한 거예요, 왜?
단 하루도 잊을 수가 없었어
[애잔한 음악]
그때 그 일
그 모습, 그 소리까지
눈만 감으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어 그 끔찍했던 일이
그래서 김 비서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세상에 끝까지 숨길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알아
그래도 최대한 늦추고 싶었어
그 고통을 조금도 나눠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영준의 옅은 한숨]
이대로 영영 기억하지 못했으면 더 좋았을걸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차라리 나도 똑같이 고통스러웠으면
나도 똑같이 나눌 수 있었으면 이렇게 미안하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미소가 훌쩍인다]
[답답한 숨소리]
지금 이렇게 배려심 넘치는 모습
부회장님하고 하나도 안 어울려요
그냥 평소처럼 이기적으로 자신만 생각하지 그랬어요
[옅은 웃음]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하나만 하는 거 어때?
[한숨]
앞으로는 뭐든 숨기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요
약속하지
오늘 밤은 내가 옆에 있어 줄게
그날처럼
[영준의 옅은 웃음]
[거리가 소란스럽다]
[무거운 음악]
[무전기 수신음]
(경찰) 대답하세요
[사이렌이 울린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빗소리가 들린다]
[천둥이 콰르릉 친다]
[까마귀 울음]
정말 성현이가 여기 갇혀 있었던 거예요?
(어린 성연) 내가 거기에 그 애 버리고 와서?
[울먹이며] 나 때문에?
[흐느낀다]
아니야 [떨리는 숨소리]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아니야 [가쁜 숨소리]
[자동차 경적] [타이어 마찰음]
(운전자) 이봐요 갑자기 그렇게 튀어나오면 어떡해요!
[자동차 경적]
(가사 도우미) 저, 사모님, 잠시 가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찻잔을 탁 놓는다]
[성연의 한숨]
성연아
(성연) 왜 사실대로 얘기하신 거예요?
왜 이제 와서 모든 걸 털어놓으신 거냐고요
[한숨 쉬며] 성연아
(성연) 처음은 내 잘못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에요
왜, 왜 좀 더 빨리 말해 주지 않으셨어요
내 기억이 잘못된 거라고
미안하다
미안해
그동안 얼마나 우스워 보였겠어요
영준이 그 자식한테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냐고요!
그렇지 않아, 성연아
영준이는 아직 몰라, 기억을 잃었으니
기억 잃지 않았어요, 영준이!
[무거운 음악]
그게 무슨…
그때 일 다 기억한다고요
뭐?
[떨리는 숨소리]
(의사) 혈압도 맥박도 다 정상입니다
일시적인 빈혈이었으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도의 한숨]
[정답게 대화한다]
[문이 드르륵 여닫힌다]
(미소) 주치의 선생님 만나고 오신다더니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어요?
중요한 손님이 찾아와서 모셔 오느라
손님요?
1994년도에서 2018년도로 타임 슬립 해서 오신 숙녀분이지
네?
아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소름 끼칠 정도로 외모가 안 변하셨거든
(미소) 어? 와, 이거 나나의 스위트 홈 세트잖아요
[미소의 탄성]
[미소의 웃음]
(영준) 그 사고 직후에 Y실업이 정리되는 바람에
겨우 하나밖에 못 구했어
혹시 몰라서 아직도 가지고 있었고
[감탄한다]
이 정도면 남편감으로 확실한 거지?
남편감요?
그게 무슨…
[밝은 음악]
기억 안 나나?
나나의 스위트 홈 사 줄 수 있냐면서 나더러 돈은 많냐면서
(영준) 당황스러울 만큼 적극적으로 결혼하자고 했었잖아
제가요?
[놀라는 숨소리]
저, 기억이 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아홉 살짜리 남자애가 나나의 스위트 홈 사 달라고 했더니
그때 집안에서 난리도 아니었지
(영준) 큰일 겪고 나서 유아기로 퇴행한 거냐 정체성에 혼란이 온 거냐
온갖 걱정 다 끼치면서 힘들게 구한 인형이지만
괜찮아, 기억하든 못 하든 어쨌든 선물이야
[멋쩍은 웃음]
고마워요
저 어렸을 때 이거 정말 갖고 싶었거든요
그때는 얼굴도 그렇게 예뻐 보이고
(미소) 이 큰 리본 달린 드레스도 그렇게 예뻐 보였는데
[어색한 웃음]
지금 보니까 촌스럽나?
조금요
[함께 웃는다]
[부드러운 음악]
(미소) 부회장님, 그거 아세요?
보통의 개껌은 소가죽으로 만든대요
그래?
그래서 개껌을 땅에 묻으면 썩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대요
(미소) 아마 빅뱅의 개껌도 흔적 없이 사라졌을 거예요
기억도 빅뱅의 개껌처럼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거고요
우리
같이 안 좋았던 기억들 땅속 깊이 묻어 버릴까요?
[미소의 기분 좋은 숨소리]
부회장님이 제가 찾던 오빠여서 좋아요
[영준의 옅은 웃음]
나도 좋아
미소를 다시 만나게 돼서
그동안 티 내고 싶은 거 겨우 참았다고
[웃음]
(미소) 괜찮다니까요
아, 저 정말 괜찮아요
(영준) 그래도 안 돼, 무조건 해
[한숨]
무슨 잠깐 기절한 거 가지고 정밀 검사를 해요?
잠깐이라도 기절한 건 몸 상태가 별로란 뜻이지
그러니까 말 들어
못 들어요, 저 출근해야 돼요, 저
그냥 하루 쉬어
못 쉬어요, 오늘 할 일 많아요, 저
[한숨]
김 비서의 그 책임감과 일에 대한 열정
9년 동안 높이 산 건 사실이야
(영준) 하지만 이제부턴 안 돼
내 여자니까
'내 여자'…
[감미로운 음악]
(미소) 제 손 오그라든 거 보이세요? 이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영준) 잘됐군
이 오그라든 손으로 일하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오늘 쉬는 거 확정 [익살스러운 효과음]
네?
(영준) 임원 회의만 끝내고 올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
무슨 일 없어도 전화해도 괜찮고
[미소의 당황한 신음]
[숨을 후 내쉰다] [문이 드르륵 여닫힌다]
[한숨]
(유식) 다음 주 오픈 예정인 유명백화점 대구 동성로점은…
(영준) 오픈 이벤트도 이 정도면 참신하고 [휙 하는 효과음]
국내 미입점 브랜드가 최초로 론칭될 예정이니
이슈 몰이 하기에도 좋겠고
대구 최대 규모의 키즈 카페가 입점된다는 점도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하면 되겠군요
씁, 이 정도면 성공적인 오픈일 것 같습니다만
[휙 하는 효과음] [리드미컬한 음악]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만
(영준) 그럼 오늘 회의 여기서 마치도록 하시죠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임원1) 벌써 끝났어?
(임원2) 아, 하나하나 이거, 꼬투리 잡느라고 길어질 줄 알았더니
웬일이래?
[놀라는 신음]
예, 이만
[문이 탁 닫힌다]
[영준의 초조한 숨소리] (유식) 아니, 뭐, 급한 일이라도 있어?
(영준) 어, 아니
(유식) 아이, 왜 이렇게 빨리 끝낸 거야?
너 나 때문이구나 나 회의할 기분 아닐까 봐
[유식의 웃음]
아이, 뭐, 괜찮은 척했는데 눈치챘구나?
나 사실 요즘 힘들었거든
전 와이프가 새 남자 친구하고 걸어가는 모습이 자꾸 떠…
[혀를 쯧 찬다]
근데 이제 잊으려고
마음 정리해야지
역시 나 생각해 주는 건 이영준 너밖에 없네
[바람 소리 효과음]
진짜 없네?
언제 저기까지 간 거야?
경보 선수인 줄, 씨
김지아 비서
전 이만 퇴근할 테니까 오늘 오후 일정은 다 취소…
씁, 뭐지?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헛것이 보이는 건 아닐 테고
오늘 출근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많이 아프지 않다고 분명 말씀드렸을 텐데요
정말 괜찮은데 정밀 검진까지 받으며 쉬는 건 특혜잖아요
특혜 좀 받을 수 있지
왜 그렇게 특혜를 싫어하나?
특혜받다가 뭐 집안이라도 몰락한 적 있나?
저희 집은 몰락할 만큼 부유했던 적이 없습니다
웃지 마, 마음에 안 들어, 김 비서, 쯧
[문이 탁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지아) 뭐예요?
부회장님이 뭐가 마음에 안 드신대요?
(미소) 아니, 뭐 [지아의 놀라는 숨소리]
김 비서님도 모르시는구나 뭘 잘못하셨는지
하여튼 우리 부회장님이 너무 예민하세요
[익살스러운 음악] (지아) 상사니까 완벽주의구나 하는 거지
남자 친구가 저러면 너무 별로일 것 같아요
그래서 연애를 못 하시나?
(미소) 네?
듣자 하니
우리 부회장님 제대로 된 연애는 못 해 보셨다 하더라고요
(지아) [웃으며] 아니, 하긴, 저 성격을 누가 받아 줘요
예민 보스에 완전 자뻑
저는 잘난 척하는 남자는 좀 별로인 것 같…
[바람 소리 효과음]
[흥미진진한 음악] 왜, 왜 그러세요, 김 비서님?
네?
[헛웃음] 아니, 뭐
참, 주간 업무 보고서는 다 작성했어요?
아니요, 아직
스케줄표는요? 하반기 해외 일정 정리는요?
- 얼른 하겠습니다 - (미소) 네, 얼른 해 주세요
(미소) 잘난 척하는 남자도 별로지만
할 일 제때 안 하는 여자도 참 별로거든요
(지아) 네
[미소의 코웃음]
[한숨 쉬며] 김 비서 또 쓰러지면 나 진짜 제명에 못 살 거 같은데
그건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너무 큰 손실이잖아
아, 저, 저거 봐
[영준의 놀라는 신음] (영준) 저렇게 피곤하면서
[한숨 쉬며] 어떻게 좀 쉬게 할 수 있는 방법 없을까?
[리드미컬한 음악]
내 보디만큼 섹시한 두뇌야 듣고 있나?
듣고 있습니다 [놀라는 신음]
듣고 있군
지금도 남들보다 세 배로 일하는 거 알지만
좀 더 분발해서 좋은 아이디어 내 보는 건 어때?
[시스템 작동 효과음]
[웃음]
(유식) 맛있어?
(마음) 아, 사장님
임원 회의 벌써 끝나셨어요?
끝났으니까 왔겠지?
아, 그, 아침에 가져온 한약 좀 데워 주겠어?
네, 2분 30초 정확하게 데워 드리겠습니다
고마워
아, 기력 보강에 아주 좋은
아주 비싼 한약이니까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부탁해
네, 걱정 마세요
[입소리를 씁 낸다]
[개운한 탄성]
야, 이게 비싼 한약이라 그런가 약발이
[사자 울음 효과음] 약발이 확 돋네
[웃음]
자, 기운 내자, 박유식
다 잊고 새 출발 하는 거야
[만족하는 숨소리]
[깜빡거리는 효과음]
[딸랑거리는 효과음] [문소리가 난다]
[마음의 다급한 숨소리]
어떡해요, 사장님
아니, 왜, 왜, 왜, 왜 뭔 사고를 쳤길래, 또
아이, 그게…
제가 사장님 한약
먹어 버렸어요
뭐?
그럼 이건 뭐야?
그거 제 다이어트 한약이에요
다… [긴장되는 음악]
(유식) '체중 감소, 식욕 억제'
[익살스러운 음악]
응, 응
짜증이 감소하고 분노가 억제되는 그런 한약은 없을까?
없는 거 같은데요
아, 그래?
어, 나 지금 그런 한약이 너무 필요한데 [웃음]
[함께 웃는다]
[휴대전화 진동음]
어, 사장님, 죄송한데 서진 님이 누구시죠?
(마음) 분명 낯익은 이름인 거 같은데
아니, 그건 왜?
(마음) 아, 오늘 생일이라고 알람이 떠서요
사장님 지인분이라고 적혀 있던데
꽃바구니 보내 드리면 되는 거 맞죠?
[코를 훌쩍이며] 아니야, 안 보내도 돼
정말요?
제가 입력해 놓은 거 보면 중요한 분이신 거 같은데
예전에는 중요한 분이었지
전 와이프야
아…
(마음) 죄송합니다, 사장님
(유식) [웃으며] 아유, 뭐, 죄송할 게 뭐 있어?
신경 쓰지 마, 괜찮아
저, 혹시 아직 마음 남아 있으시면 꽃이라도 보내 드리는 게…
아이고, 마음은 무슨
설 비서도 봤잖아
전 와이프 새 남친 생긴 거
그 남친이 잘 챙겨 주겠지
응, 그만 가서 일 봐
네, 알겠습니다
[한숨]
(치인) 호텔 스파요?
네, 지금 바로 부속실 직원 다 같이 스파받고 오시죠
네, 알겠습니다
아, 근데 지금 근무 시간인데
이것 또한 근무의 일환입니다
(영준) 이번에 리뉴얼한 일루전 호텔 스파 라인 피드백이 필요해서요
직접 체험해 보시고 제대로 된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 그러면 부회장님 수행할 김미소 비서만 놔두고
[밝은 음악] 전부 갔다 오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방금 부속실 직원 다 같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 직원은 김미소 비서도 포함입니다만
네, 알겠습니다
그럼 김미소 비서도 함께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옅은 웃음]
(스파 직원) 전신 순환 케어 끝나셨고
석고 마스크 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 (세라) 네 - (지아) 네
[지아의 들뜬 신음] (지아) 저 호텔 스파 처음 받아 봐요
우리 피부 진짜 좋아지겠다
난 안 그래도 꿀피부라 더 좋아질 필요 없는데
(세라) 날 보는 썸남 눈에서 꿀이 뚝뚝, 뚝뚝 떨어지거든요
썸남요? 봉 과장님 썸 타세요?
네
그는 곤경에 처한 날 매번 도와주는 슈퍼히어로 같은 남자예요
근데 저는 남자가 절 도와주면 애 취급 하는 거 같아서 별로던데
(지아) 김 비서님은 어떤 스타일 좋아하세요?
어, 저는
배려심 많고 따뜻한 스타일
아, 부회장님이랑
정반대되는 스타일 좋아하시는구나
[세라와 지아의 웃음]
왜요, 우리 부회장님도 배려심 많고 따뜻한 사람…
[깜빡거리는 효과음] (지아) 따뜻?
[메시지 수신음]
아, 잠시만요
(세라) 네
(영준) 김 비서, 좋은 시간 보내고 있나?
[경쾌한 음악]
[메시지 수신음]
(미소) 덕분에요
호텔 측에 제대로 된 피드백 줄 수 있게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영준)
(영준) 혼자만 쉬게 해 주는 건 특혜지만
이건 부속실 전체의 수혜잖아
[딸랑거리는 효과음]
[메시지 수신음]
(미소)
이런
기습 공격을 당했군
텅 비어 있는 하트를 보냈어도 됐는데
속이 꽉 찬 하트를 보내다니
나에 대한 마음이 이렇게 꽉 차 있다는 건가?
[메시지 수신음]
(영준)
아, 김 비서님, 아까부터 그렇게 누구랑 깨톡, 깨톡 하세요?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긴요
(지아) 얼핏 봤는데
부회장님인 거 같던데요?
어머, 또 일시키는 거예요?
진짜 지독하다 쉴 땐 좀 쉬게 해 주지, 진짜
(지아) 아이, 거봐요
배려심 많고 따뜻하다더니 아니잖아요
[지아의 웃음]
[유식의 탄성]
(유식) 자
으음!
맛있다
아유, 역시 스테이크는 혼자 먹어도 참 맛있다, 응?
[유식의 웃음]
[잔잔한 음악] [유식이 흥얼거린다]
이게 뭐야?
(유식) 아니, 자기 여기 스테이크 좋아해서
결혼기념일에도 생일에도 여기만 오잖아
그래서 오늘 실컷 먹으라고
내가 스테이크 케이크를 한번 만들어 봤어
[함께 웃는다]
아, 대박
아이, 뭐 해, 소원 빌고 촛불 불어야지
[함께 웃는다]
[한숨]
설 비서가 준 식욕 억제 한약을 먹어서 그런가, 이게
영 입맛이 없네
[유식이 입소리를 쩝 낸다]
(유식) 혼자 청승맞게 여긴 왜 온 거야
[다가오는 발걸음]
서진아
(서진) 유식 씨
여, 여기서 만나네? [멋쩍은 웃음]
아, 저, 나 사실
여기 오면 당신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왔…
당신 정말 잔인한 여자다
아, 뭐?
(유식) 그래, 뭐…
그래, 뭐, 헤어졌으니까 다른 남자 만나는 거는 이해해
근데 여기 같이 오는 건 아니지
어? 매년 나랑 둘이서 같이 오던 데인데
이건 나한테도 새 남자 친구한테도 예의가 아니지 않아?
[서진의 기가 찬 숨소리]
(서진) 남자 친구 아니야
아, 그럼? 그럼 남…
남편?
[말을 더듬으며] 아니, 벌써 재혼, 재혼한 거야? 나한테 얘기도 안 하고?
[서진의 한숨]
사촌 오빠야
그래, 사촌 오빠겠…
사촌 오빠?
(유식) 안녕하세요, 오빠
[서진의 한숨] (서진 사촌) 네
나 화장실 좀
(서진) 어, 오빠
[서진의 한숨] [잔잔한 음악]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을 왜 이렇게 몰아붙여?
왜 이렇게 경솔해, 사람이?
아이, 경솔…
[한숨]
몰랐겠지만 오늘 내 생일이야
고마워, 행복한 생일 만들어 줘서
아이, 서진아, 서…
알고 있었어, 네 생일인 거
그래서 여기 온 건데
(유식) 유명랜드 지도는 왜 보는 거야, 오너야?
아, 아, 우리 오너가 다 생각이 있어서 보는 걸 텐데
내가 경솔하게 물은 건가?
그랬다면 정말 미안해
뭐, 그렇게 사과할 것까지야
그래, 뭐, 생각해 보니까 사과할 일은 아니었네
내가 정말 경솔했네
왜 이렇게 경솔 타령이지?
아까 우연히 전 와이프를 봤는데
아니, 나한테 경솔하다더라고
아, 뭐, 뭐, 사실 내가 경솔했어, 응
무슨 얘기 하는 거야? 이제 그만 잊겠다며
그러니까 잊으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거기서 마주치는 바람에…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내가 거길 간 게 경솔했네
경…
(유식) 저, 오너야
너는 김 비서하고 절대로 헤어지지 마라
이별은 아픈 거거든
[헛웃음]
아, 내가 두 사람한테 또 조언을 했네?
경솔했네, 경솔했어, 어, 경솔했어
저, 오너야
오늘 우리 술 마시자
오늘은 갈 데가 있어
김 비서랑?
나야, 김 비서야?
[기가 찬 신음] 뭐 하자는 거지?
[통통 튀는 효과음] 그러지 말고 나랑 술 마시자, 어?
혼자 있기 쓸쓸해서 싫어
[한숨]
그래, 혼자 쓸쓸하게 둘 순 없지
[익살스러운 효과음]
그럼 김 비서 말고 나 선택한 거야?
그럴 순 없고
항공사 인수 후에 별다른 넥스트가 없는 거 같은데
가서 미팅하고 사업 진행 현황 알아 오는 거 어때?
[익살스러운 음악]
지금 이 와중에 나 일시키는 거야?
혼자 있기 싫다며?
일하기는 더 싫거든, 어?
아, 아, 아, 내가 괜한 말을 했네, 어?
경솔했어, 내가 아주 경솔했어
박유식이 아니고 박경솔이라고 불러 줘, 앞으로
박경솔
[삐거덕하는 효과음]
잘 가
[드르렁 소리를 낸다]
[휙 하는 효과음]
[드르렁 소리를 낸다]
경솔했어, 경솔, 경솔
[직원들이 왁자지껄하다]
- (세라) 보송보송 - (치인) 아유, 안녕하십니까
- (세라) 안녕하세요 - (유식) 예, 예
(치인) 아따, 스파받고 오니까 피로도 싹 풀리고, 마
억수로 좋네, 아이고
(세라) 나갔다 오니까 기분도 붕 뜨고 일도 손에 안 잡힐 거 같은데
그냥 이대로 퇴근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마다 말한다]
(영준) 그럼 퇴근하시죠 [직원들의 놀라는 숨소리]
(세라) 죄송합니다 제가 시, 시, 시, 실언을 했습니다
(영준) 아, 죄송할 것도 당황할 것도 없습니다
봉 과장님이 얘기하시기 전에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그럼 모두 퇴근하시고 푹 쉬시죠
(치인) 아입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니, 이미 스파 갔다 온다고 반나절 날렸는데
부회장님 덕분에 좋아진 컨디션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영준) 괜찮습니다, 퇴근들 하시죠
이런 날도 있어야 업무 능력도 오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업무 능률 지금 당장 올리겠습니다
그냥
내일 올리시죠
[익살스러운 효과음] [흥미로운 음악]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 그럴, 그럴까요, 그럼?
예
(치인) 아, 자, 그러면
이, 직원들의 사기 충전을 위해 애써 주신 부회장님을 위해…
(영준) 됐습니다
이 정도 소소한 일로 박수 치시면 손바닥이 남아나질 않을 테니까요
그럼 모두 퇴근들 하시고
김 비서는 남아서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지
(미소) 네
퇴근하세요 [치인의 탄성]
- (세라) 안녕히 계세요 - (치인) 예, 내일 뵙겠습니다
[저마다 인사한다]
(영준) 오해하지 마, 김 비서
이것 역시 특혜가 아니야 모두 다 일찍 퇴근시켜 준 거니까
(미소) 오늘은 그렇다 쳐도 내일부턴 이러지 마세요
저 진짜 괜찮으니까
(영준) 컨디션은 좀 어때?
좋아요, 덕분에
그럼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지
어딜요?
[옅은 웃음]
[한숨]
(영준) 양 비서도 이만 퇴근하지
난 김 비서와 가 볼 데가 있어서
(미소) 오늘 다들 일찍 퇴근했거든요
아, 알겠습니다
[차 문이 달칵 열린다] (철)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하, 그럼 다들 퇴근했겠네?
봉 과장님도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미소) 근데 갑자기 여긴 왜 오자고 하신 거예요?
(영준) 여길 보여 주고 싶었어
딱 이 자리였더군
그 집
우리가 갇혀 있던 그곳 말이야
그걸 어떻게…
갑자기 알아보고 싶어서
항공 사진, 옛날 지적 자료
유명랜드 배치도까지 다 비교해 봤거든
그랬더니 딱 여기였더라고
(영준) 이 회전목마
그 사실을 알고서 가장 처음 든 생각이 뭐였는 줄 알아?
'다행이다'였어
[잔잔한 음악]
그때의 그 끔찍했던 기억들이
이 회전목마를 타고 행복해하는 사람들로 인해
덮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미소) 그렇네요
이제 이곳엔 고통스러운 일 대신
즐거운 일로만 가득할 테니까
[아이들의 웃음]
(영준) 그리고 또 하나 보여 주고 싶은 곳이 있어
(미소) 여기는 왜요?
동전 던지고 소원 빌자고요?
(영준) 김 비서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잖아
여기, 애타게 찾던 진짜 오빠를 찾았으니까
(미소) 그러네요
(영준) 전에 궁금해했지? 예전에 살던 집이 어디쯤일지
(미소) 그럼…
그래, 여기야
정말요?
와, 신기하네요 여기가 우리 집이었다는 게
부회장님 말대로 귀신의 집이나
공중화장실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웃음]
김 비서는 모를 거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때 그 일을 얘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한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앞으로도 우린 행복할 거예요
계속 함께일 거니까
[미소의 옅은 웃음]
(미소) 오늘 즐거웠어요, 부회장님
알아
나랑 함께였는데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영준) 그러니까 그런 새삼스러운 말들은 삼가도록 해
김 비서 그 입만 아플 테니까
배려 감사합니다
전 그럼 이만 가 볼게요
김 비서
네?
밤공기도 좋고 나랑 산책도 하고 싶을 텐데
그 소망 지금 이뤄 줄까?
[잔잔한 음악]
영광입니다
(미소) 쭈쭈바 처음 드시는 건데 어떠세요?
식용 색소에 설탕을 넣어 얼린 거긴 하지만
씁, 맛은 꽤 그럴싸하군
(영준) 근데 가끔 고무 맛이 나는 게 좀 흠이지만
[미소의 웃음]
김 비서
오늘 밤은 우리 집으로 가지
그게 무슨…
혼자 있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 그래
그 사건 이후에 한동안 후유증이 꽤 심했거든
밤마다 그 여자가 떠올라서 잠을 잘 수도 없고
자더라도 악몽에 시달리고
(영준) 김 비서가 혹시 나처럼 악몽에 시달릴까 봐 걱정이 돼
그래서 오늘 밤은 혼자 있게 두고 싶지가 않아
고마워요
근데 저 괜찮아요
(미소) 사실 전 그때 일이 자세하게 기억은 안 나요
워낙 어렸잖아요
그냥
'죽은 사람을 보고 엄청 무서운 거미라고 생각했구나'
그 정도예요
너무 고통스럽진 않아요
그러니까 정말로 힘들면 그때 얘기할게요
그땐 예전처럼 저 지켜 줄 거죠?
그럼, 내가 지켜 줄 거야
혹시라도 무서운 생각이 들면 바로 연락해
밤새도록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영준) '나의 모든 순간은 너였어'
'사랑했던 때도'
'아파했던 때도'
'이별했던 그 순간까지도'
'너는 나의 세상이자'
'모든 순간이었어'
'나는 이제 네가 없으면'
'내 지금까지의 삶을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발소리가 들려온다] [고양이 울음]
[초인종이 울린다]
(미소) 누구세요?
누구세요?
(영준) 나야
[도어 록 작동음]
부회장님?
부회장님이 왜 다시…
싫다고 해서 왔어
네?
김 비서가 우리 집에 가기 싫다고 해서
내가 김 비서 집에서 같이 자려고
오늘 같이 자자
[밝은 음악]
(영준) 밤공기를 쐬며 와인을 한잔한 후
아참, 근데 와인 오프너가…
잠시만요
- (영준) 김 비서, 그거 아나? - (미소) 네?
(영준) 그 와인 2천만 원짜리야
많이 불편해 보이시는데
(영준) 그 사건을 겪은 후에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거든
그런데 김 비서가
나하고 같은 공포를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밤새웠어
김 비서
(영준) 오늘 밤엔 장담 못 해, 나
.김비서가 왜 그럴까↲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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