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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비서가 왜 그럴까 12

 

누구세요?

 

(영준) 나야

 

[도어 록 작동음]

 

부회장님?

 

부회장님이 왜 다시…

 

싫다고 해서 왔어

 

네?

 

김 비서가 우리 집에 가기 싫다고 해서

 

내가 김 비서 집에서 같이 자려고

 

나 여기서 같이 살 거야

 

오늘 같이 자자

 

[밝은 음악]

 

가, 같이 자자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왜 말이 안 되지?

 

말이 안 되죠, 지금 저더러 동…

 

동거를 하자는 말씀이시잖아요

 

며칠 정도만 지낼 생각이니까 동거까지는 아니고

 

세미 동거 정도?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세미 동거는 또 뭐예요

 

아, 그리고 저희 집 원룸이라 방 하나밖에 없어서 같이 못 자요

 

그래서 방이 넘쳐 나는 우리 집으로 가자니까

 

싫다고 한 건 김 비서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렇긴 하면 좀 비켜 주겠어?

 

(영준) 이 짐 다 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놀란 신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미소의 당황한 신음]

 

[당황한 숨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어떡해, 나 어떡해

 

(영준) 읏차

 

[도어 록 작동음]

 

(미소) 어머나, 어, 어디 그냥 막…

 

[당황한 신음]

 

신발이 별로 없군

 

(영준) 김 비서 덕분에 공간은 충분하겠어

 

[영준의 힘주는 신음]

 

[신발장을 달칵 닫는다]

 

[당황한 신음]

 

[강조되는 효과음]

 

이 공간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지

 

(미소) 어유 [영준의 만족스러운 신음]

 

이렇게 하면 옷장 공간도 충분하고

 

(미소) 어…

 

(영준) 화장대 역시 여유가 있군

 

김 비서 혹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건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살아가는

 

대출금을 갚느라 쇼핑할 여유가 없었을 뿐입니다

 

 

[영준의 힘주는 신음]

 

[미소와 영준의 당황한 신음]

 

[심장 박동 효과음]

 

[미소의 당황한 숨소리]

 

설마 긴장한 건가?

 

(영준) 오늘 밤 같이 있을 생각에

 

[당황한 숨소리]

 

아닙니다, 그런 거

 

그래, 긴장하지 마, 김 비서

 

오늘 밤 내 목적은

 

[부드러운 음악]

 

김 비서가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 주는 거

 

그것뿐이니까

 

[영준의 웃음]

 

김 비서의 편안한 수면을 돕기 위해서 내가 가져온 게 있지

 

(영준) 바로

 

사해 소금이 함유된 최고급 족욕제야

 

족욕제요?

 

족욕을 하면 발이 따뜻해지면서 기와 혈액의 순환이 활발해지고

 

노폐물과 독소가 배출되면서 편안한 수면에 도움을 준다고 하더군

 

 

그럼 우리 족욕 타임을 가져 볼까?

 

 

가지

 

[강조되는 효과음]

 

이,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군

 

[민망한 숨소리]

 

죄송해요, 저희 집에 욕조가 없어서

 

(미소) 많이 불편해 보이시는데 그냥 댁으로 가시는 게…

 

(영준) 안 불편해, 낯설 뿐이야

 

내가 진짜 불편한 건

 

김 비서가 나 없는 곳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편안하게 발 담그고 릴랙스하도록 해

 

욕조든 대야든 효과는 똑같을 테니까

 

 

[피식 웃는다]

 

[숨을 씁 들이켠다]

 

[변기 레버가 달칵 눌린다]

 

[변기 물이 솨 내려간다]

 

[발랄한 음악] [당혹스러운 신음]

 

 

이, 이게, 이게 어쩌다…

 

[민망한 신음]

 

수압이 참 훌륭하군

 

(미소) 아, 감사합니다

 

변기가 자주 막히는 편인가?

 

[미소의 어색한 웃음]

 

(미소) 그럴 리가요

 

(영준) 어때?

 

기와 혈액의 순환이 활발해지고

 

노폐물과 독소가 배출되면서 수면에도 도움이 되는 거 같나?

 

[웃으며] 네

 

(미소) 아, 정말 좋아요 오늘 꿀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준) 다행이군

 

그럼 이제 잘까?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영준의 한숨] [미소의 놀란 신음]

 

그럼 김 비서도 잘 자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 거지?

 

그게, 왜 제 옆으로…

 

그럼 난 어디로…

 

그럼 이 상태로?

 

(영준) 당연하지

 

침대가 이거 하나밖에 없잖아

 

(미소) 그렇긴 한데…

 

(영준) 자, 그럼

 

김 비서가 편안한 침대를 제공해 줬으니

 

난 베개를 제공해 주지

 

베개는 이미 있는데

 

그런 베개 말고 숙면을 위한 스페셜한 베개를 준비했지

 

내 팔베개야

 

[영준의 힘주는 숨소리]

 

[영준의 만족스러운 숨소리]

 

[당황한 숨소리]

 

[다급한 숨소리]

 

[영준의 의아한 숨소리]

 

(영준) 어?

 

[미소의 어색한 웃음] [영준의 당황한 숨소리]

 

지금…

 

[미소의 멋쩍은 웃음]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지?

 

갑자기 잠이 깨서요, TV 좀 보려고요

 

(영준) 아니, 뭐…

 

TV 보기 좋은 각도이긴 한데

 

이 시간에?

 

 

아, 저, 영화 채널이 몇 번이었더라? 잠깐만

 

[TV 전원음] [영준의 멋쩍은 신음]

 

[감성적인 음악이 흘러나온다] (미소) 아, 여기…

 

[강조되는 효과음]

 

[민망한 신음] [TV에서 스포츠 중계가 흘러나온다]

 

아, 축구, 축구, 축구

 

유럽 프리미어… 아, 이거, 이거 볼까요?

 

[미소의 어색한 웃음]

 

(영준) 저게 그렇게 재밌나? 씁

 

김 비서 혹시

 

나랑 한 침대에 있는 게 불편해서 그런가?

 

불편하다기보단

 

좀 어색하기도 하고

 

[한숨] 어쩐지 긴장이 돼서 잠이 잘 안 올 거 같아서요

 

[흥미로운 음악]

 

[영준의 힘주는 신음]

 

[영준이 숨을 깊게 내쉰다]

 

쩝, 그럼 와인 한잔하지

 

와인요?

 

와인은 체온을 낮춰 주고

 

수면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편안한 숙면을 도와주지

 

좋아요

 

아, 근데 저희 집엔 와인은 없는데

 

그 정도는 예상했어 그래서 내가 챙겨 왔지

 

(영준) 루프톱 와인 바 같은 느낌이군

 

밤공기를 쐬며 와인을 한잔한 후 들어가서 숙면을 취한다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플랜이야

 

그러네요

 

[웃음]

 

[피식 웃는다]

 

(영준) 아, 근데 와인 오프너가…

 

아, 저희 집엔 와인 오프너가 없습니다

 

그럼 이거 못 마시는 건가?

 

아니요, 방법이 있습니다

 

(미소) 제가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와인 오프너 없이 와인병을 딸 수 있는 법

 

[웃음] [밝은 음악]

 

[미소의 웃음] (영준) 김 비서, 조크가 늘었어

 

'오프너 없이 와인을 딴다' 마술인가?

 

아니요, 기술입니다

 

[기가 찬 숨소리]

 

저, 신발 한 번만 빌려주시겠어요?

 

신…

 

뭐, 속는 셈 치고

 

감사합니다

 

잠시만요

 

이렇게

 

[영준의 불안한 신음] [미소의 웃음]

 

김, 김 비서 지금 뭐 하는 거지?

 

아, 이렇게 하면 코르크가 나온대요

 

(미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

 

[미소의 당황한 신음] [영준의 헛웃음]

 

(미소) 아, 죄송해요

 

김 비서, 그거 아나?

 

네?

 

그 와인

 

2천만 원짜리야

 

[멀리서 개가 짖는다] [바람 소리 효과음]

 

(미소) 죄송했습니다

 

잘했어, 김 비서

 

[웃음]

 

(주민) 1757!

 

1757 차주 어디 있어요!

 

참 무례한 이웃들이야

 

(주민) 1757!

 

이 야심한 밤에 소리 지르는 저분도 1757 차주도

 

잠깐, 1757이면 부회장님 차 번호 아니에요?

 

(주민) 1757!

 

[멀리서 개가 컹컹 짖는다]

 

[주민의 한숨]

 

(주민) 저기, 이 차 주인이에요?

 

(영준) 예

 

(주민) 아, 여기 지정 주차 구역인데

 

이렇게 마음대로 주차를 하시면 어떡해요?

 

(영준) 아, 지정 주차

 

실례했습니다

 

아유, 원룸에 살면서 이런 비싼 차가 웬 말이야, 응?

 

[익살스러운 음악] 저, 부회장님, 빨리 차를 빼 주시는 게 좋을…

 

아니, 딱 보니 아들뻘이라 걱정돼서 하는 소리예요

 

(주민) 자고로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 돼

 

이렇게 겉멋에 찌들어 살면 안 되는 거라고

 

겉멋… [멀리서 개가 컹컹 짖는다]

 

찌들어요? [주민의 옅은 웃음]

 

아, 울 아들은 겉멋 그런 거 하나 모르고

 

(주민) 착실하게 공부만 하더니

 

이번에 유명그룹 공채에 떡하니 붙었잖아 [주민의 웃음]

 

그 유명그룹을 이끄는 게 바로 접니다

 

어머

 

어머머

 

(주민) 술 취했으면, 어? 차 몰지 말아요

 

어? 아가씨, 아가씨가 운전해, 응?

 

[휴대전화 진동음] 아유, 참, 아유, 아유, 어머

 

(주민) 어, 아들

 

어, 야근 중이야?

 

아, 그놈의 회사는 왜 이렇게 일을 시켜

 

웃대가리 얼굴 한번 좀 봤으면 좋겠다 그냥, 혼 좀 내 주게

 

[익살스러운 효과음]

 

웃대가리…

 

(주민) [웃으며] 응, 그럼

 

[미소의 한숨]

 

[영준의 헛웃음]

 

(영준) 그래

 

김 비서 먼저 올라가서 쉬고 있어

 

난 유료 주차장에 차 옮기고 와인 오프너 사 갈 테니까

 

아닙니다

 

여러모로 많이 불편해 보이시는데 지금 이대로 댁으로 가셔서…

 

아니, 말했잖아

 

김 비서 혼자 두면 마음이 안 놓일 것 같다고

 

그러니까 같이 가자고요

 

부회장님 댁으로 같이 가요

 

부회장님 댁… 우리 집?

 

 

[멀리서 개가 컹컹 짖는다]

 

잘 생각했어

 

그냥 김 비서네 집에 있어도 되는데

 

아닙니다, 좁고 없는 것도 많고

 

불편하실 부회장님 생각하면 제가 밤새 잠을 못 잘 거 같아서요

 

내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

 

나 그 사건을 겪은 후에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거든

 

(영준) 근데 김 비서가 나하고 같은 공포를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걱정이 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부드러운 음악]

 

무슨 마음인지 알아요

 

아니까 지금 부회장님 댁으로 같이 가고 있는 거고요

 

[웃음]

 

전 오늘 게스트 룸에서 자겠습니다

 

- 게스트 룸? - (미소) 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한숨]

 

[한숨]

 

[긴장한 숨소리]

 

[숨을 깊게 내뱉는다]

 

좀 무서운데

 

[긴장되는 효과음] [미소의 비명]

 

[놀란 신음]

 

[놀란 신음]

 

김 비서, 괜찮나?

 

놀랐잖아요, 무슨 일이에요?

 

[한숨]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어

 

(영준) 김 비서 집은 아담해서

 

김 비서가 뭐 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지만

 

내 집은 그럴 수가 없잖아 지나치게 넓어서

 

넓은 집이 불편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그래서요?

 

잘 자는지 확인하고 싶어

 

내 옆에 두고

 

여, 옆요?

 

[영준의 한숨]

 

(영준) 여긴 소파도 없고

 

내가 바닥에서 자면 김 비서가 밤새 신경 쓰일 테니까

 

침대에서 같이 자 주지

 

[익살스러운 음악]

 

김 비서가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아

 

하지만 내 머릿속은 김 비서를 향한 걱정으로 가득 차서

 

다른 생각을 품을 공간이 없지

 

(영준) 그러니까 아무 생각 말고 푹 자

 

(미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거절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지겠지?

 

[익살스러운 효과음]

 

(미소) 무슨 말이라도 해요, 제발

 

(영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어색함을 깨려면

 

빨리 작동하렴, 나의 스페셜한 두뇌야

 

기, 김 비서

 

네, 부회장님

 

자장가 불러 줄까?

 

(미소) 오글거리지만 뭐든 해요

 

네, 불러 주세요

 

[미소의 웃음]

 

(영준) 민망하긴 하지만 뭐든 하자

 

좋아

 

내가 특별히 불러 주지

 

[웃음]

 

[영준의 머뭇거리는 숨소리]

 

[영준이 목을 가다듬는다] [미소의 어색한 웃음]

 

지…

 

지…

 

♪ 지친 하루가 가고 ♪

 

(영준) ♪ 달빛 아래 두 사람 ♪

 

♪ 하나의 그림자 ♪

 

♪ 눈 감으면 잡힐 듯 ♪

 

[잔잔한 음악]

 

♪ 아련한 행복이 ♪

 

♪ 아직 저기 있는데 ♪

 

(영준) ♪ 상처 입은 마음은 ♪

 

♪ 너의 꿈마저 ♪

 

♪ 그늘을 드리워도 ♪

 

♪ 기억해 줘 ♪

 

♪ 아프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

 

♪ 곁에 있다는 걸 ♪

 

♪ 때로는 이 길이 ♪

 

♪ 멀게만 보여도 ♪

 

♪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흘러도 ♪

 

♪ 모든 일이 추억이 될 때까지 ♪

 

♪ 우리 두 사람 ♪

 

♪ 서로의 쉴 곳이 되어 주리 ♪

 

♪ 너와 함께 걸을 때… ♪

 

[잔잔한 음악]

 

[피식 웃는다]

 

오늘은 이걸로 충분해

 

[떨리는 신음]

 

[떨리는 숨소리]

 

[새가 지저귄다]

 

[신음]

 

[강조되는 효과음]

 

[흥미로운 음악]

 

(미소) 어?

 

왜 벌써 일어나셨어요?

 

밤새웠어

 

왜요?

 

김 비서의 숙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애썼거든

 

[한숨]

 

[영준의 한숨]

 

[영준의 한숨]

 

김 비서

 

오늘 밤엔 장담 못 해, 나

 

[경쾌한 음악]

 

(음란 마귀) 오, 예

 

[음란 마귀가 키득거린다] (영준) 아이, 깜짝이야

 

이, 이 음란 마귀가…

 

(음란 마귀) 울랄라

 

(영준) 저리, 저리 가 [음란 마귀가 키득거린다]

 

(영준) 가!

 

- 김미소한테 가 - (음란 마귀) 오, 노!

 

[음란 마귀가 키득거린다] (영준) 파이팅

 

음, 향 좋다

 

[의아한 숨소리]

 

근데 부회장님이 왜 잘 못 주무셨지?

 

오늘 밤엔 뭘 장담 못 하신다는 건지…

 

[반짝이는 효과음]

 

설마…

 

아, 어떡해

 

어머 [음란 마귀가 키득거린다]

 

[음란 마귀의 탄성] (미소) 아, 저, 저리 가세요

 

어, 나 그런 생각 안 했거든요?

 

허, 날 뭘로 보고

 

[음란 마귀의 탄성] 가세요!

 

[밝은 음악]

 

[익살스러운 효과음]

 

동영상으로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뭐 하는 거지?

 

부회장님

 

김 비서가 왜 직접 요리를 하는 거지?

 

아, 어제부터 저를 위해서 마음 써 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제가 뭐라도 해 드리고 싶어서 오믈렛을 만들어 봤는데…

 

[익살스러운 효과음]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게 이런 건가?

 

버리겠습니다

 

(영준) 씁, 내 거야

 

김 비서가 나한테 만들어 준 내 거

 

[피식 웃는다]

 

제가 모양이라도 다시 잡아 드릴게요

 

더 이상 손대지 마

 

[한숨]

 

[영준의 옅은 웃음]

 

잘 먹을게

 

[웃음]

 

[미소와 영준의 웃음]

 

커피도 좀 드세요

 

오늘 못 주무셔서 피곤하실 거 아니에요

 

고마워

 

[의미심장한 효과음]

 

어머, 컵 바꿔 드릴까요?

 

아, 괜찮아

 

오늘은 좀 조심해야 될 것 같군

 

아, 컵에 금 가 있으면 안 좋은 일 생기는 거

 

부회장님 징크스죠

 

[의미심장한 음악]

 

(영준) 이렇게 같이 출근하니까 정말 좋군

 

(미소) 아! 아…

 

[미소의 신음]

 

- (영준) 괜찮나? - (미소) 네

 

[걱정하는 숨소리]

 

(영준) 삐끗한 건가?

 

출근하기 전에 병원부터 가 봐야겠군

 

아, 발목은 괜찮아요 구두 굽이 좀 긁혀서요

 

(미소) 제가 아침에 구두 굽이 긁히면 꼭 안 좋은 일이 생기거든요

 

[한숨]

 

뭐, 징크스?

 

(영준) 그래, 징크스

 

난 이유 없이 잔이나 그릇이 깨지면 꼭 무슨 일이 있거든

 

저는 오전에 구두 굽에 흠집이 생기면 온종일 운이 없는 징크스가 있고요

 

씁, 아이, 글쎄, 응?

 

난 그런 거 잘 안 믿는데

 

아니, 사실 나 오늘 출근하다가 까마귀도 보고

 

(유식) 오늘 출근해서 물 마시다가 컵을 깨트리고

 

그리고 문에 긁혀서 구두가 까졌거든?

 

근데 아무 일도 없잖아? 오히려 좋은 일이 생겼지

 

(영준) 좋은 일?

 

(유식) 응, 유명바이어 신약 개발 성과 좋다고 확인하고 오는 길이잖아

 

그건 내가 유능해서고

 

아무튼

 

징크스 같은 거 다 미신이야, 응?

 

아이, 우리 그런 거 너무 연연해 하지 말자고, 선진국 스타일로

 

[피식 웃는다]

 

(영준) 아참, 김 비서 오늘 내 저녁 일정 취소하지

 

- 너도 저녁 스케줄 취소해 - (유식) 왜?

 

김성기 말이야 결국 폐암으로 입원했단다

 

곧 수술한대

 

뭐, 폐암?

 

어, 그분, 유학 시절 후배분 맞으시죠?

 

어, 맞아,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서 목숨에 지장은 없단다

 

아이, 성기 그 자식, 담배 그렇게 피워 댈 때부터 내가 알아봤어

 

(유식) 두 사람도 건강 관리 잘해, 응? 나처럼

 

넌 너무 과하게 챙겨서 문제고

 

(유식) 과한 게 낫지, 응? 주변을 한번 돌아봐 봐

 

응? 건강 관리 안 해서 허망하게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사람이 있잖아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애잔한 음악]

 

나 와이프 떠난 후에 그 빈자리가 얼마나 쓸쓸했는지 알아?

 

[한숨]

 

기승전 전 와이프군

 

아, 박 사장 말이야 요즘 매일 전 와이프 얘기거든

 

아…

 

[버럭 하며] 네가 내 맘을 알아?

 

[익살스러운 효과음]

 

목소리가 좀 컸지?

 

[숨을 씁 들이켜며] 아니, 난 사촌 오빠인 줄도 모르고

 

전 와이프한테 새 남자 친구 생겼냐고 경솔하게 따지다가

 

(유식) 화해할 기회조차 놓쳐 버린 내 심정을 네가 아냐?

 

[한숨 쉬며] 그래, 나는 틀렸어, 너 먼저 가

 

[휴대전화 진동음] 쩝, 아유, 설 비서 진짜…

 

(미소) 왜 안 받으세요?

 

와이프야

 

[휴대전화 진동이 계속 울린다]

 

여보

 

세요

 

(서진) 어제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마음이 안 좋아서 전화했어

 

저, 혹시 유식 씨

 

그 레스토랑 내 생각 나서 온 거야?

 

어…

 

어, 거기 가면 당신 볼 수 있을 거 같아서

 

유식 씨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유식) 어, 오늘 저녁…

 

칵테일을 마시자고?

 

[익살스러운 음악]

 

[웃음]

 

(영준) 아…

 

아, 이게 뭐, 뭐 하는 짓이야, 이게 [유식의 벅찬 신음]

 

(유식) 오늘 만나지, 응

 

아, 아, 저기, 미안하지만 오늘 밤늦게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병원을 좀 갔다 와야 돼서

 

응? 벼, 병원?

 

왜, 어디 아파?

 

아, 실은

 

성기가 상당히 아파서 병원을 좀 가야…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 아, 아! 아니, 아니 저기, 저기, 그 성기가 아니고

 

그 성, 그 성기가 아니고 다른, 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유식) 아, 다른 성기가 아니고 저기, 저기, 김성기라고

 

유학 시절에 알던 후배 놈이 있는데… [통화 종료음]

 

여보세요, 서진아 서진아, 여보세요, 여보!

 

[애잔한 음악]

 

까마귀, 깨진 컵, 까진 구두 이 중에서 뭐가 내 징크스였을까?

 

- 전부 다요 - (영준) 전부 다

 

곁에 있을 때 잘해야 돼 나처럼 놓치고 후회하지 말고

 

[한숨]

 

어?

 

[문이 달칵 여닫힌다]

 

별일 없었죠?

 

 

여기 부회장님 다음 주 스케줄표 정리했습니다

 

고생했어요

 

[웃으며] 네

 

(지아) 그럼 저는 기획 팀 회의 좀 다녀올게요

 

(미소) 네

 

(미소) 다음 주 스케줄표입니다

 

그것보다

 

아까 박 사장이 한 말 기억나지?

 

무슨 얘기요?

 

곁에 있을 때 잘하란 얘기 놓치고 나서 후회하지 말란 얘기

 

(영준) 그 얘기 듣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더군

 

만약 김 비서가 내 곁을 떠난다면

 

김 비서가 얼마나 후회할지 말이야

 

[흥미로운 음악]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라고

 

서로 잘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난 아주 잘하고 있잖아 물론 앞으로도 당연히 잘할 거지만

 

네, 인정해요

 

[미소와 영준의 웃음]

 

오늘 점심 스케줄 어떻게 되지?

 

정연그룹 한 차장님과의 오찬 약속이 미뤄져서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럼 점심 같이 하지

 

있을 때 잘해야 되니까 아주 맛있는 걸 사 줄 예정이야

 

(부장) 그럼 회의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죠

 

- (부장) 아, 지아 씨 - (지아) 네

 

(부장) 오늘 내가 준 자료들은 보안 문서니까 나가면서 꼭 폐기하도록 해요

 

네, 바로 폐기할게요

 

[부장의 힘주는 신음]

 

- (귀남) 고생하셨습니다 - (부장) 고생했어요

 

(지아) 수고하셨습니다

 

(지아) 여보세요

 

어, 은정아

 

토요일? 아유, 나 완전 시간 되지

 

그래, 그럼 우리 오랜만에 거기 가서 에그 베네딕트 먹자

 

[신난 신음] 오랜만…

 

[놀라며] 야! 야, 일단 끊어 봐!

 

[흥미로운 음악] 어, 어떡해

 

[파쇄기를 탕탕 친다] 스톱! 안 돼! 아, 다시 나와

 

[지아가 울먹인다]

 

무, 무슨 일 있습니까?

 

그게… [한숨]

 

보안 문서를 넣는다는 게

 

아, 오늘 메모한 회의록을 파쇄기에 넣어 버렸어요

 

(지아) 아, 이따 부회장님께 보고해야 될 내용들인데 저 어떡해요

 

나와 봐

 

워워, 워워, 스톱, 스톱, 스톱, 스톱

 

(귀남) 비켜 봐요, 잠깐

 

[지아의 놀란 신음]

 

아, 어떡해, 내 회의록 아, 가루가 됐네

 

[지아가 울먹인다] (귀남) 침착, 침착

 

아까 보니까 볼펜으로 회의록 끄적이는 것 같던데

 

(지아) 네, 아, 부장님이 노트북 자판 소리 싫어하신대서

 

손 글씨로 썼거든요

 

아이, 그런 세심한 사람이 왜 이런 실수를

 

이거 아무튼 볼펜으로 쓴 종이만 찾으면 되니까

 

뭐, 생각보다 쉽겠네요

 

찾죠, 볼펜으로 쓴 종이

 

(지아) 네

 

볼펜 [귀남이 중얼거린다]

 

(지아) 다음은 이건 거 같은데

 

아니죠, 자, 보세요

 

이렇게, 이렇게

 

(귀남) '신성장 동력 및 전략 사업 육성 계획'

 

[놀란 신음]

 

이렇게 해야 문맥이 맞죠?

 

우와

 

이게 다

 

회의 내용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도 아시죠?

 

네, 진짜 대단하세요

 

[웃으며] 아이, 뭐, 참

 

아이참

 

[숨을 씁 들이켠다]

 

[만족스러운 웃음]

 

(귀남) 자, 다 됐습니다

 

[지아의 탄성] 와, 감사합니다

 

[지아의 웃음]

 

사실 저

 

완벽하신 김 비서님 밑에서 일하면서 나름 스트레스받거든요

 

(지아) 저도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안되고

 

[한숨]

 

그런 와중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까지 해 버려서

 

가서 어떻게 말씀드려야 되나 엄청 두근두근했는데

 

[밝은 음악]

 

이렇게 도와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멋쩍은 숨소리] 아니, 뭐…

 

그, 이웃사촌끼리 돕고 사는 거죠 [웃음]

 

[웃음]

 

[놀란 신음]

 

(지아) 어머, 아, 어떡해 아, 이 부분이 번져 있는데

 

R&D 예산을…

 

아이, 얼마큼 늘리기로 한 거지?

 

- 5.8 - (지아) 5…

 

네?

 

5.8 늘리기로 했습니다

 

우와

 

디테일한 수치까지 외우시고

 

[웃음] 기본이죠

 

아, 그럼 전 남은 업무를 위해서

 

이만 [웃음]

 

(지아) 감사합니다

 

[귀남의 뿌듯한 숨소리]

 

갖고 싶은 남자 1위인 이유가 있구나

 

[웃음]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영준) 감사합니다

 

(미소) 어, 캐러멜이다

 

(영준) 캐러멜이 그렇게 좋나?

 

저한텐 소울 푸드 같은 거예요 캐러멜이

 

소울 푸드?

 

어릴 때 부회장님이 마지막 하나 남은 캐러멜 저한테 양보해 주셨잖아요

 

살면서 가끔 그때가 떠올랐어요

 

그때 받은 배려가 위로가 되는 느낌이랄까?

 

[피식 웃는다]

 

저 근데 궁금한 게 있어요

 

이성현이라는 이름 왜 바꾸신 거예요?

 

[옅은 한숨]

 

그리고 작가님은 어쩌다 잘못된 기억을 갖게 된 거죠?

 

아, 꼭 지금 설명 안 해 주셔도 돼요

 

우리가 함께할 날은 많으니까 천천히 얘기해 주세요

 

[옅은 웃음]

 

아참, 우리 이거 먹고 같이 갈 데가 있는데

 

같이 갈 데?

 

 

[웃음]

 

(세라) 우와, 점심시간 10분밖에 안 남았어

 

완전 슬퍼

 

(영옥) 아, 점심시간 한 3시간 되면 좋겠어요

 

(세라) 내 말이 [세라의 속상한 신음]

 

- 왜? - (영옥) 저기

 

(영옥) 영업 팀 최 대리랑 총무 팀 김 대리 사귄다는 얘기 들었어요?

 

어머, 정말?

 

- 너무 좋겠다 - (영옥) 어머

 

완전 부럽다, 정말

 

부러우면 봉 과장님도 연애하시면 되죠

 

그 슈퍼히어로 같은 썸남이랑

 

그 썸남?

 

하, 진짜 지구를 구하러 다니는 건지

 

[울먹이며] 아무 말이 없네

 

- (영옥) 아직도요? - (세라) 아, 몰라, 씨

 

(영옥) 아, 뭐야, 뭐야, 어떻게 된 거야

 

- (치인) 자기야, 이날 - (준환) 네

 

(치인) 해외 출장 보고서 내가 작성하랬잖아

 

- (준환) 예, 작성했습니다, 예 - (치인) 작성했어?

 

[치인과 준환이 대화한다]

 

(영옥) 어머, 양 비서님 점심 햄버거로 때우시는 거예요?

 

(준환) 아, 오늘 부회장님께서 프라이빗한 식사 약속이 있으시다고

 

[세라의 못마땅한 신음]

 

[휴대전화 진동음]

 

에이

 

[익살스러운 효과음]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세라) 내가 아무튼 못 살아, 정말, 진짜

 

(준환) 왜 그러세요?

 

아이, 동네 아는 오빠인데 자꾸만 밥 먹자고 그러네

 

[익살스러운 음악] 바쁘다는데도 끈덕지게…

 

[헛기침] (준환) 그래요? 씁

 

이, 제 명석한 두뇌로 추측해 보건대

 

봉 과장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닐까요?

 

(세라) 허, 그런가? 마음이 있나?

 

(치인) 야, 당연하지, 내가 봐도

 

딱! 이 마음이 있네, 응?

 

보험 들게 하려는 마음

 

[세라의 못마땅한 신음] [직원들의 웃음]

 

[웃으며] 아니, 하시는 행동이 보험 들게 하려고 작정하신 분 같구먼

 

보험 하시는 분 맞제?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내가 솔로인 거 알고 이러는 거 같은데

 

이럴 때 누가 확실히 고백을 해서 솔로 탈출하게 된다면

 

그럼 이렇게 귀찮게 하는 일 없을 텐데

 

[세라의 멋쩍은 웃음]

 

[버럭 하며] 지금 콜라가 넘어가요?

 

[콜록거린다]

 

(치인) 어유, 야, 양 비서 사레들리…

 

아, 뭐꼬 갑자기 왜 양 비서한테 뭐라 하노?

 

아니…

 

나도 콜라 좋아하는데 혼자만 마시니까 그러죠

 

(세라) 아으, 진짜

 

양치나 해야지

 

(치인) 저거 와 저라노?

 

(준환) 콜라 엄청 좋아하시나 본데요?

 

사내 커플 부럽다

 

아, 됐어, 됐어

 

헤어지면 껄끄럽기만 한 사내 커플 따위

 

시켜 줘도 절대 안 한다, 내가

 

아, 깜… [웅장한 음악]

 

[철의 가쁜 숨소리]

 

[강조되는 효과음]

 

이게 뭐예요?

 

꼭 혼자 드셔야 됩니다

 

꼭요

 

 

[철의 가쁜 숨소리]

 

(세라) 뭐야, 아까 혼자 먹는다고 뭐라고 했더니

 

콜라 사 온 거야?

 

[기가 찬 신음] 누가 이런 거 달래?

 

왜 꼭 혼자 먹으란 거야?

 

[익살스러운 효과음]

 

[부드러운 음악] (철) 봉 과장님

 

(세라) 응?

 

(철) 귀여워요

 

[웃음]

 

(철) 우리 사귈래요?

 

[세라의 놀란 숨소리]

 

[꺼억 트림을 한다]

 

[콜록거리며] 어머, 어떡해

 

어유 [트림을 꺽 한다]

 

이 콜라 뭐야 [웃음]

 

[애교스러운 신음]

 

[웃음]

 

[세라의 애교스러운 신음]

 

(영준) 같이 갈 곳이라는 게 우리 유명백화점의 경쟁사였나?

 

뭐, 시장 조사라도 하려고?

 

그게 아니라 필요한 게 있는데

 

유명백화점으로 가면 부회장님 등장에 다들 긴장할 테니까요

 

근데 필요한 거라니?

 

(미소) 저기 있다!

 

[밝은 음악]

 

(미소) 이거 어때요?

 

부회장님께 예쁜 컵 하나 선물해 드리고 싶은데

 

선물?

 

오전에 컵 깨진 게 마음에 걸렸거든요

 

예쁜 컵 선물받으시고 징크스 같은 거 확 날려 버리시라고요

 

[피식 웃는다]

 

이거 포장해 주세요

 

(점원) 네, 알겠습니다

 

근데 같은 라인으로 식기 세트가 출시됐는데

 

그것도 보시겠어요? 신혼부부들한테 인기가 좋거든요

 

신혼부부요?

 

그 세트 당장 주시죠

 

아닙니다, 머그잔만 주세요

 

(점원) 네, 알겠습니다

 

왜? 신혼부부에게 인기 좋다는 그 식기 세트 사고 싶어, 나

 

불필요한 소비는 좋지 않아요

 

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세미 동거 상태니까 [익살스러운 효과음]

 

신혼부부랑 비슷하잖아 [휙 하는 효과음]

 

그 말 좀 안 쓰시면 안 될까요? 누가 들을까 봐 무섭네요

 

신혼부부

 

식기

 

(미소) 글쎄, 안 돼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멀어지는 발걸음]

 

신혼부부 식기

 

씁, 근데 이상하군

 

분명 혼난 거 같은데 기분이 나쁘지 않아

 

[웃음]

 

(영준) 아주 마음에 쏙 들어

 

(미소) 그래도 이제 그만 넣으시는 게…

 

(영준) 싫어, 더 보다 넣을 거야

 

아참, 나도 김 비서의 징크스에 대해 고민하다가

 

몇 가지 해결책을 생각해 봤어

 

해결책요?

 

1번, 전 직원의 운동화 착용을 의무화한다

 

[밝은 음악]

 

그럼 더 이상 구두를 신을 일 자체가 없을 거고

 

구두가 긁힐 일도 없겠지

 

전 직원이 운동화라…

 

그건 좀 과한 해결책 같네요

 

2번, 걷는 일을 최소화시킨다

 

내 여자의 안전을 위해 전용차와 베테랑 운전사를 제공하지

 

아참, 이번 차는 절대 되파는 일 없었으면 해

 

[헛기침]

 

그것도 조금 과한 해결책 같습니다

 

3번, 나도 김 비서에게 새 구두를 선물한다

 

김 비서도 예쁜 새 구두 신고 징크스 날려 버리라고

 

그게 제일 좋은 해결책 같네요

 

[미소와 영준의 웃음]

 

우리 이제 징크스 같은 거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함께 있으니까 이제 다 괜찮을 거야

 

그럼 이제 구두 사러 갈까?

 

마음에 드는 거 다 사 주지

 

말씀드렸잖아요 불필요한 소비는 안 좋은 거라고

 

전 딱 한 켤레만 살 거예요, 아셨죠?

 

[한숨]

 

알겠어, 전형적인 재벌처럼 굴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지아) [초조하게] 김 비서님, 김 비서님

 

아, 김 비서님, 김 비서님…

 

오! [수화기를 달칵 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드리려고 했는데

 

회장님과 사모님 와 계십니다

 

[문이 달칵 여닫힌다]

 

(미소) 지아 씨

 

내가 홍보 팀 회의에 들어가야 되는데 대신 좀 가 줄 수 있을까요?

 

회의록 정리만 해 오면 되는데

 

아, 아, 네, 그럴게요

 

- (지아) 다녀오겠습니다 - (미소) 네, 고마워요

 

[멀어지는 발걸음]

 

[옅은 한숨]

 

[한숨]

 

(이 회장) 영준아, 성연이한테 들었다

 

너, 기억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던데

 

사실이니?

 

[무거운 음악]

 

[한숨]

 

그렇게 어른스럽고 생각이 깊던 네가

 

그날의 기억만 도려낸 듯이 잊었다고 했을 때

 

내가 더 의심을 했어야 했는데

 

(최 여사) [떨리는 목소리로] 아니에요, 내 잘못이에요

 

당신이 성연이를 입원시키자고 했을 때

 

내가 고집부리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내 탓이에요

 

(이 회장) 영준아,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줄 수 없겠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염치 불고하고 묻고 싶구나

 

[쓸쓸한 음악]

 

[까마귀 울음]

 

(어린 영준) 이게 뭐야 놀이공원 같은 거 없다 그랬잖아

 

[어린 성연의 한숨]

 

(어린 성연) 좀만 더 가면 돼 기철이가 봤다고 했다니까

 

(어린 영준) 거짓말이라니까 아직 부지 매입 중이라 했단 말이야

 

난 그냥 집에 갈래

 

치, 기사 아저씨 따돌리고 올 때는 언제고

 

무섭냐?

 

아니거든?

 

됐으니까 물 있으면 좀 줘 봐

 

없는데?

 

아이씨, 아까부터 목말라 죽겠는데

 

아, 그럼 너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래? 가서 음료수 사 올게

 

같이 가

 

왜? 혼자 있기 무섭나 보지?

 

아니라고 했잖아!

 

갔다 와, 대신 탄산음료는 안 돼 치아에 안 좋으니까

 

꼭 여기 있어야 해 길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어린 영준) 빨리 갔다 와

 

이상하다

 

한참 돌아다녔는데 왜 사람이 한 명도 없지?

 

(여자) 꼬마야

 

[긴장되는 음악]

 

내가 다리를 다쳐서 그러는데 이것 좀 같이 들어다 주면 안 될까?

 

어, 어디까지요?

 

우리 집은 저 위거든 거기까지만 부탁해

 

저도 집에 빨리 가야 되는데요

 

하, 큰일이네

 

지금쯤 우리 딸 혼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침부터 우리 딸 열이 많이 났었거든

 

빨리 가 봐야 하는데 내가 다리를 다쳐서

 

아, 제가 같이 들어다 드릴게요

 

착한 아이구나?

 

이거 마실래?

 

고마워서 주는 거야

 

아니요, 괜찮아요

 

사양할 필요 없어, 정말 고마워서 그래

 

그럼, 고맙습니다

 

이 방에 있는 짐

 

영준이 방으로 옮겨 주세요

 

네? 갑자기 왜…

 

거기가 제 방이잖아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처음부터 거기가 제 방이고

 

여긴 영준이 방이었어요

 

[쓸쓸한 음악]

 

아저씨는 다 알고 계셨죠?

 

제가 어릴 때부터 이 집에 계셨으니까

 

(집사) 그럼 주말쯤 말씀하신 대로 옮겨 놓겠습니다

 

원래 다 그 녀석 거였어

 

이 방도

 

그날의 일들도

 

(젊은 이 회장) 어디에 두고 왔어? 어디냐고, 어서 말해!

 

성연아, 시간이 없어, 빨리 말해, 어?

 

어디야! 성연아!

 

아빠한테 얘기해 [젊은 최 여사의 신음]

 

성연아 [가사 도우미들이 말한다]

 

말해!

 

(젊은 최 여사) 성현아

 

[무거운 효과음]

 

(의사1) 평생 흉터가 남을지도 모릅니다

 

나 때문에… [떨리는 숨소리]

 

그렇다고 기억까지 뒤바꾸다니

 

[한숨]

 

그때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영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절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린 영준) 내 방에서 뭐 하는 거야?

 

[떨리는 숨소리]

 

내 옷을 왜 입고 있어?

 

내 물건 건드리지 말랬잖아!

 

[분한 숨소리] 네가 내 방에 왜 들어와?

 

형 방이라니? 여기는 내…

 

(어린 성연) 나가! [어린 성연의 분한 숨소리]

 

너 때문에 난 3일 동안 거기 갇혀서…

 

3일 동안 거기 갇혀서 죽을 뻔했다고! [긴장되는 음악]

 

[어린 성연의 분노에 찬 숨소리] 당장 나가

 

당장 내 방에서 나가!

 

씨! 당장 내 앞에서 꺼져!

 

꺼지라고! 나가! 나가란 말이야!

 

[울부짖으며] 나가! 나쁜 놈아!

 

(의사2) 죄책감이 너무 심한 나머지 아예 기억을 바꿔 버린 것 같습니다

 

[젊은 최 여사의 한숨] 납치된 아이가 본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어요

 

오히려 주변에서 자신을 속인다며 공격적인 모습도 보이고요

 

[젊은 최 여사의 떨리는 숨소리]

 

(어린 성연) 내 앞에서 꺼져!

 

당장 꺼지라고! 나가!

 

꺼져!

 

(영준) 처음의 그 당황스러움은

 

[씩씩거린다]

 

점차 억울함과 분노로 바뀌어 갔어요

 

그 모든 일을 겪은 건 난데

 

아직도 아프고 힘든데

 

날 가해자로 몰아세우다니

 

(어린 성연) 이 나쁜 놈!

 

[어린 영준의 성난 신음] 너 이리 와

 

[어린 영준이 소리친다] 내가 꺼지라고 했지!

 

[소란스럽다]

 

나쁜 놈아!

 

(영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저도 지지 않으려고 했고

 

나중에는 뜯어말려야만 겨우 진정이 될 정도로 점점

 

포악해져 갔어요, 우린

 

정신 병원이라니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젊은 최 여사) 성연이가 심약해서 그런 거라잖아요

 

죄책감 때문에 잠깐 혼란이 온 것뿐이라잖아요

 

[한숨 쉬며] 그런 애를 어떻게…

 

(젊은 이 회장) 어제 성연이가 야구 배트까지 휘두르는 거 못 봤어?

 

그리고 성현이 생각도 해야지

 

이런 상황에서 걔가 안정을 취할 수 있겠어?

 

이러다가 애 둘 다 망가진다고

 

[젊은 최 여사의 한숨]

 

(젊은 최 여사) 그렇다고 성연이를 어떻게 정신 병원에…

 

[흐느끼며]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흐느낀다]

 

죽고 싶어, 나 정말 힘들어

 

[떨리는 숨소리] [젊은 최 여사가 연신 흐느낀다]

 

[차분한 음악] (영준) 저에게 죽음은

 

더 이상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는 죽음은

 

형체도

 

소리도

 

냄새도

 

더없이 선명했으니까

 

[젊은 최 여사의 한숨]

 

(젊은 이 회장) 성연이는?

 

[한숨]

 

식사하지

 

(젊은 최 여사) 어머! [긴장되는 효과음]

 

성현아!

 

(어린 영준) 형이 유괴됐었다고요?

 

제가 거기 형을 두고 와서…

 

정말 기억이 안 나요

 

죄송해요

 

미안해, 형

 

[젊은 최 여사의 놀란 숨소리]

 

그때는

 

그렇게 해야만 다들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울먹이며] 미안하다, 영준아

 

다 나 때문이야

 

제일 힘들었던 건 너였을 텐데

 

(최 여사) 내가 괜한 말을 해서

 

[차분한 음악]

 

성연이야

 

그 일이 자기가 겪은 거라고 알고 있어도

 

직접 그 상황을 본 건 아니니까 트라우마가 덜할 거라고

 

우리는 그게 너희 둘 다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바로잡았더라면

 

너희가 지금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한평생 죄책감에

 

후회하면서 살았어

 

(이 회장) 우리 잘못이다

 

그 큰 짐을 너 혼자 짊어지게 해서

 

[흐느끼며] 정말 미안했어

 

[한숨]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최 여사) 아니야

 

이해하려 하지 마, 영준아

 

지금이라도 우리를 원망하고 탓해

 

많이 힘들었다고

 

혼자서 외로웠다고

 

말해도 돼

 

그래도 돼, 영준아

 

[영준이 흐느낀다]

 

[흐느낀다]

 

[힘겨운 숨소리]

 

[심호흡]

 

[헛기침]

 

[이 회장의 한숨]

 

김 비서

 

우리 영준이 잘 부탁해

 

걱정 마세요, 사모님

 

[멀어지는 발걸음]

 

[옅은 한숨]

 

[잔잔한 음악]

 

[살짝 웃는다]

 

부회장님, 우리 오늘 저녁 뭐 먹을까요?

 

글쎄

 

아침에 오믈렛 잘 드시던데 그거 한 번 더 만들까요?

 

아, 아니면 아참, 우리 어제 와인 남은 거 있는데

 

그거 마시면서 영화 한 편 볼까요?

 

형은 지금 어때요?

 

곧 프랑스로 돌아갈 거래

 

아마 오랫동안

 

안 돌아오지 않을까

 

[다급한 숨소리]

 

[타이어 마찰음]

 

[자동차 가속음]

 

[새가 지저귄다]

 

무슨 일이야?

 

결국 선택한 게 또 도망인가?

 

뭐?

 

그래

 

네 눈에는 내가 나약하고 한심해 보일 거야

 

(성연) 그러니까 그때도 그런 오만한 결정을 한 거겠지

 

넌 그때 날 믿어 줬어야 했어

 

내가 스스로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주고

 

끝까지 나랑 싸워 줬어야 했어 진실을 덮지 말고!

 

그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거

 

잘난 너뿐이라고 생각하고 기억을 잃은 척한 거겠지만, 난!

 

너의 그 오만한 판단 때문에

 

널 미워하고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데 내 인생의 절반을 썼어, 알아?

 

미안해

 

뭐?

 

 

내가 기억을 잃은 척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형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이성현이란 이름 대신

 

이영준이란 새 이름으로 살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어

 

나 하나만 희생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런데 오늘

 

한평생을 죄책감에 살았다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고통스럽더라도

 

그때 다 같이 극복했어야 했었던 거 아닌가 하는

 

그게 가족이잖아

 

[차분한 음악]

 

형 말대로 내가 오만했어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뺏어 버려서 미안해

 

 

내가 용서가 돼?

 

그렇게 오랫동안 널 괴롭혔던 날?

 

지난 시간이 괴롭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형 때문은 아니었어

 

그날 그 일로 받은 충격이 컸을 뿐이지

 

처음부터 형 때문에 괴로웠던 게 아니니까

 

용서하고 말고 할 것도 없잖아

 

(영준) 그러니까 형도

 

힘들겠지만

 

괴로움 다 내려놓고 편해졌으면 좋겠어

 

내가 아닌 형 자신을 위해서

 

미안하다

 

그때 난

 

내가 아니어야 했어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

 

[흐느낀다]

 

[잔잔한 음악]

 

[심호흡]

 

[살짝 웃는다]

 

[풀벌레 울음]

 

[영준이 피식 웃는다]

 

(미소) 왜 웃으세요?

 

(영준)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불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개운해져서

 

솔직히 말하길 잘했구나 싶어

 

그럼요, 솔직한 것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럼

 

지금 기분 솔직하게 얘기해도 되나?

 

오늘 밤을 그냥 보내고 싶지가 않아


.김비서가 왜 그럴까↲ 

.영화 & 드라마 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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