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팔이17
[태현/독백] 그리고 6개월이 지났다
나는 개업의, 쉽게 말해 동네 의원의 원장이 되었다
레지던트 수련 과정을 마치지 못했으니
전문의가 되지도 못했고
그러니 어디 취직할 데도 없고
그래서 그냥 한적한 동네의 털털한 의사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유유자적하게
이제 더 이상 숨 가쁘게 조폭 왕진을 다닐 필요도
특권층을 위한 역겨운 왕진을 다닐 필요도 없다
근데 사실 그다지 유유자적하지 못하다
[소현] 오빠!
왜? [투덜대는 소리]
뭐야? 밥 다 됐어?
[소현] 뭐 해? 빨리빨리 안 내려오고
점심시간 끝나가잖아
빨리 먹고 내려가, 환자들 기다려
알았어, 인마
[쨍, 덜그럭, 턱턱 - 식기]
밥하는 사람 생각도 해줘야지
맨날 하루 세끼 꼬박꼬박 집에서 먹어대면서
[상철] 그래, 맞아요, 응?
가끔 사람이 밖에 나가서 외식도 하고
그럼 얼마나 좋아
야, 넌 취직 안 하냐?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려 가만 좀 놔둬
오빠, 국 더 줄까?
[잘그랑 - 식기]
[태현/독백] 그리고 소현이는
건강하다
[희미한 식기 소리]
[남자] 쓰, 회장님
이번에 새로 오신 총리님과는 통화를 해보셨습니까?
아니요, 아직
그러지 않아도 총리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일간 한번 뵙기를 청한다고
음, 글쎄요
음, 이번엔 또 얼마나 오래 가실지 모르는데
굳이 저까지 만날 필요가 있을까요?
그야 그렇지만은
저쪽에서 매우, 쓰 간곡히 뵙기를 청하니
뭐, 자리를 같이하시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합니다만
선거가 코앞인데
경제인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게 옳지 않을까요?
물론 그야 그렇지만은
그럼 고문님께서 먼저 만나보시고
용건을 검토한 다음에 회동을 결정하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행장님도 같이 가시죠
아, 예, 그게 좋겠네요
[들어가려고 실랑이한다]
[비서실장] 잠깐이면 돼 잠깐이면, 어?
어? 하하, 한 회장님!
[웃으며] 잠깐 나 좀 보소, 야
[최 회장의 웃음]
- [최 회장] 야 - 어떻게 할까요?
[옅은 한숨]
- 들어가십시오 - [최 회장] 흠
[최 회장/불평하며] 하, 참
[최 회장이 헛기침하며 웃는다]
아이고, 마침 행장님도 여 계시네요
[최 회장의 웃음]
[헛기침하며] 하…
[최 회장] 한 회장님
한 번만 살려주이소, 예?
음…
누가 죽기라도 하나요?
[흥미로운 음악]
하… 한 회장님
행장님한테 한 말씀만 해주이소, 예?
[최 회장] 하, 행장님 이번에 들어오는 것만 막아주믄
결제는 틀림없이 사흘 안에 하겠습니다, 예
[최 회장의 한숨]
[최 회장] 한 회장님, 이라지 말고
대, 대, 대승적으로다가 한 번만 용서해 주이소
아무리 전쟁을 치랐다캐도
이, 항복을 하믄 목숨은 살려줘야 될 거 아닙니까
이래 꼭… [한숨]
자, 자, 잔인하게 해야 되겠심니까
고기는 잘근잘근 씹어야 맛이라면서요
지난번에 제가 보내드린 고기 맛은
어떠셨어요?
[쨍 - 식기]
[탄식]
[고조되는 음악]
[경호원] 이제 그만 나가주시죠
[최 회장의 힘주는 소리]
[최 회장] 으하하하
[한숨 쉬며] 그래
아들은 오래비한테 죽고
그 오래비는 아버지한테 죽고
그 아버지는 또
죽은 오래비 동생한테 죽는구나
- [경호원] 뭐 하고 있어? 끌어내 - [최 회장의 웃음]
- [경호원] 빨리 - [최 회장] 하하하
[최 회장이 힘주며] 놔, 씨!
[가쁜 숨소리]
그라믄
동생은 누구한테 죽을꼬?
[경호원] 뭐 해? 끌어내!
[최 회장] 하하하!
[여진/독백] 복수도, 전쟁도
이렇게 끝났다
[쨍 - 식기]
[띡 - 체온계]
- [드르륵] - [태현] 음…
[고민되는 숨소리]
열이 언제부터 났어요?
엊그제부터요, 해열제 먹였는데도
음
왜요? 감기 아니에요?
그, 감기일 수도 있는데
아, 이거 확실치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어, 모르신다고요?
제가 전공이 소아과가 아니라서
나, 참, 나
아, 이건 솔직하다 해야 하는 거여
아니믄 조금 모지라다고 해야 하는 거여?
아니, 환자 앞에서 모르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여?
아, 몰라도 좀 말이여 아는 척함서, 이
일단 폼 딱 잡고
그리고 열, 열이 난다고 그러니까 해열제에다 소화제 좀 넣고
마이신 이렇게 섞어서 처방을 해줘야지
그건, 그, 그, 그건 나도 허겄구먼
이, 도대체 장사를 하자는 거여 뭐 하자는 거여, 아이고, 참
- 아니, 나도 그러면 좋은데, 쯧 - [목탁 소리 효과음]
아, 근데 여기 왜 계신 거예요, 지금?
아니, 애기 그냥 감기약 줘 아이고, 배야
- 아저씨, 누, 누군데 그러세요? - [두철] 나요?
저, 이, 이 병원 주, 주, 주, 주… 주주요
- [두철의 헛기침] - [태현] 네, 선배, 난데요
예, 그, 6세 남아인데
예, 증상은 감기고
쓰, 근데 좀 달라요
그, 피버는 38.5도고
예
아, 형
아가
음, 메롱 해봐, 음
아, 그러네 이거 스트로베리 텅이야
손바닥?
아하
응, 맞네, 가와사키
예, 고마워요
[띡 - 휴대폰 조작음]
그, 가와사키 디지즈네요
무, 무슨 '디지즈'요?
그, 증상은 감기인데 가와사키라는 병이에요
제가 의뢰서 써드릴 테니까
밖에서 받으시고 2차 병원 가보세요
이거 그냥 감기 치료하느라 시기 놓치면
나중에 커서 심장에 문제 될 수 있어요
- 진짜요? - 히익
심, 심장에, 무, 문…
아우,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처방전 없으니까 그냥 들어가세요
[아이 엄마] 수고하세요
- 가자 - [태현] 잘 가
[아이 엄마의 웃음]
[아이 엄마] 자
- 아니… - [태현] 아, 왜요?
나는 그, 사람이 솔직하지 못한 것보다
좀 무식한 게 낫다고 봐요, 나는
그,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
번번이?
됐고요, 뭐, 어디 아프세요?
아이고, 뭐, 쓱, 배가 살살 아프고
또 이거, 설사도 나오고
쓰, 어제 안주로 뭐 드셨어요?
음, 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허! 아니
근데 어저께 내가 술 마신 걸 어떻게 안대?
그, 아직도 입에서 그, 술 냄새가 엄청 나요, 아휴
에이, 그러지, 뭐 지가 무슨 허준이도 아니고
척 보믄 뭐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헤헤, 참 - 아…
그, 약 드시면 안 되고 당근 쪄서 으깨서 드세요
또 처방전이 없다, 이 말이지?
네, 그, 처방전은 없는데
- 돈은 내고 가세요 - 여봐, 여봐, 쓰, 에헤이
아, 그럼 아까멘키로 저, 나, 너, 처방전이 없는디
왜 나한테 돈을 받어? 응?
아이, 두목은 사정이 좋잖예
저 집은 요즘 형편이 안 좋아요
어이구, 너므 집 형편도 알어유?
아유, 그럼요 내가 이 동네 유지인데
유지? 아, 누가 그려요?
아이, 그, 뭐 동네 슈퍼 사장님도 그러고
부동산 사장님도 그러고
다 나한테 그래요 이 동네 유지라고
헤헤, 지랄 염병들 하고 자빠졌네유
- 참 - [함께 웃는다]
[태현] 예
[수녀] 원장님 오후 진료 끝났어요
도마의 집 가셔야죠?
예, 갈게요
흠, 아저씨가 안 아프게 놔줄게요
따끔
아흐, 아파요
어우, 진짜 아픈가 보네
아이고
[태현/웃으며] 자
- 수고하셨어요, 원장님 - [태현] 아이, 수고는요
- 예방 주사는 다 끝난 거죠? - [수녀1] 네
인제 어르신들만 봐주시면 돼요
아휴, 좀만 쉬었다 하세요
[태현] 아, 그럴까요?
쓰, 그럼 애들이랑 좀 놀아도 되죠?
근데 애들이 주사 놓는 아저씨랑 놀아줄까요?
- [수녀2의 웃음] - 아, 그런가
아참, 사모님도 와계신데
정말요?
[채영] 아~ 때가 있네요
- [아이의 옹알이] - [채영] 이쪽 보자, 어, 여기도
에구, 아이구
시원하지, 시원하지? 이쪽, 이쪽도, 어
- [채영] 에구, 귀여워 - [물소리]
사모님
어, 원장님 오셨어요?
- 자 - 좀 쉬었다 해요
좀만 기다려요 얘네들까지만 하면 끝나요
- [채영의 웃음] - [아이의 옹알이]
자, 우리 엉덩이도 볼까? 엉덩이 어떻게…
[채영] 어휴, 허리야
야, 요령이 생길 만도 한데
애들 씻기는 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
- 쯧, 그럼요, 힘들죠 - [채영] 하
그래도 저것들이 예쁘니까 이 짓도 하지
안 그랬으면 해먹지도 못해
그래도 참 대단해요
힘든 일 안 해보신 사모님께서
아휴, 사모님 집어치운 지가 언제인데
너 자꾸 그러면 아주버니라고 부른다니까
[태현의 웃음]
알았어요 뭐,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누나, 누나 같은 거 있잖아
후~
[태현의 옅은 웃음]
알았어요
- 누나 - [채영] 오냐
거봐, 좋잖아
하…
아쉽지 않아?
뭐가요?
재벌 회장 부군 때려치운 거
[빵빵빵 - 자동차 경적]
[옅게 웃으며] 전혀요
그래?
난 아쉬운데
그래요?
일부러 도준 씨 괴롭혔던 거
- [애잔한 음악] - 여진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리지 못한 거
검찰청 뒷마당에 차 안 댄 거
그리고
- 그날… - [태현] 아니에요
제 잘못이 커요
- 제가 차라리 그날… - [채영] 아니야
자기가 그 사람 구하려고 애쓴 거 내가 더 잘 아는데, 뭐
그리고 그 사람도
저세상에서 참 고마워할 거야
아직도 여진이랑 연락 안 해?
- [옅은 웃음] - [짝짝 - 박수]
자, 빨리 마무리하시죠
[수녀] 원장님 어르신들 다 준비됐어요
- [태현] 예, 가요 - [수녀] 예
아참, 저…
이거요, 병원 살림에 보태 쓰세요
어우, 아니에요
저번에 주신 지도 얼마 안 되셨는데
수녀님, 이거 지금 사양할 때가 아니에요
- 어휴, 참 - [태현의 웃음]
[수녀] 우리 원장님 넉살도 좋으셔
원래 그래요, 원래
- [함께 웃는다] - [수녀] 아유, 참
- [함께 웃는 소리] - [태현] 들어가시죠
[채영/독백] 복수는 시작됐다 이미 오래전에
[어두운 음악]
[민 실장] 그래, 알았어
- [띡 - 휴대폰 조작음] - 왜?
별일 아닙니다
말해
방금 전 대정의 최 회장이 자살을 기도한 모양입니다
[무거운 효과음]
뭐?
[여진의 놀라는 숨소리]
- [무거운 음악] - [여진의 떨리는 숨소리]
그래서 죽었어?
죽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쪽 실장이 빨리 발견해서
오늘은 좀 쉬고 싶어
알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무거운 효과음]
[여진의 심호흡]
[여진의 떨리는 호흡]
괜찮아
[비밀스러운 음악]
[여진/독백] 아빠
아빠는 어떻게 견디셨어요?
[옅은 한숨]
[고조되는 음악]
회장님!
회장님!
내가 또 기절한 거야?
네
혹시라도 새 나가지 않게 입단속 잘하고
알겠습니다
근데 주치의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안 돼
의사는
[여 집사의 한숨]
알겠습니다
저, 회장님
주제넘은 소리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원수든 친구든 누군가 자신 때문에 자살을 했다면
쇼크를 일으킬 만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누구도
회장님을 약하게 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옅은 한숨]
[침을 꿀꺽 삼키며] 편한 옷 좀 줘
바람 좀 쐐야겠어
[새소리]
[잔잔한 음악]
[태현]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
내 엄마가 죽은 건 당신 때문이 아니니까
당신은 이곳에서 편안하게 좋은 뷰를 감상할 수 있겠지만
저 아래에 내려가면 사람들도 있고
냇물도 있고 숲길도 있고
그리고 바람의 언덕도 있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건
뭐든 다 있어
[옅은 심호흡]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갈래?
[태현] 그래
살다 보면 또 소풍이 그리울 때가 있겠지
그럼 언제든지 나한테 와
기다리고 있을게
[함께] 건배
[밝은 음악]
[저마다 시원한 탄성을 내지른다]
[턱 - 캔]
[혀를 쯧 차며] 아휴 재벌 동생 덕 좀 보나 했더니
대낮에 슈퍼 앞에 앉아서 깡맥주나 깔 줄은 몰랐네
것도 저 빠박이 조폭 아저씨들하고
왜, 뭐요?
- [태현의 웃음] - [턱 - 캔]
아, 누나, 여기 얼마나 좋아요
세상에서 이 자리가 제일 좋아
[태현/쯧 혀를 차며] 이렇게 해봐요
[덜거덕 - 의자]
- 아유, 너무 편해, 아유 - [수간호사] 어떻게?
- 이렇게? - [덜그럭 - 의자]
아, 편하긴 편하다
난 살면서
지금처럼 행복했던 때가 없었어요
소현이가 구박해도 좋고
진료비 못 받아도 좋고
두목이 조폭들 데려와도 좋고
[태현] 또 이렇게 시원한 맥주도 마시고
바람을 느끼면서
[여진] 바람이 느껴져
[태현/독백] 여진아
너도 빨리 와
[태현] 시원하죠? 흐흐
[여진/독백] 태현아 너한테 가고 싶어
[무거운 효과음]
[채영] 뭐야? 하늘에 뭐가 보여?
- [태현/웃으며] 누나 왔어요? - [수간호사] 왔어요?
- [드르륵 - 의자] - [채영] 족발 사 왔지
- [수간호사] 와, 족발 - [태현] 와, 족발 완전 좋아
[부두목] 뭐야?
[두철] 아니, 이게 무신 개족보여
누님이라니, 처남댁헌티!
아니, 근데 빠박이 조폭 아저씨가 여기를…
경찰 어디 있어?
아저씨? 여기요, 여기요!
- [부두목] 뭐, 경찰? - [두철] 이 자식이 쫄기는, 참
그동안 무탈허셨지유?
- [웃으며] 네, 덕분에요 - [두철] 하하하하
[두철과 채영의 웃음]
[두철의 헛기침]
[한숨]
[쓸쓸한 음악]
- 가지 - [기사] 네
[덜컥 - 기어]
[함께 웃는 소리]
- [태현] 와! - [두철의 헛기침]
- [수간호사] 오, 푸짐하다 - [태현] 오
[여진/독백] 다행이야
니가 행복해서
[진행자] 다음은
한신 그룹 한여진 회장님의 격려사가 있겠습니다
- [우아한 음악] - [짝짝 - 박수]
[박수가 이어진다]
[찰칵찰칵 - 카메라 셔터음]
오늘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또 이렇게 기쁜 날에
이 자리에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신 총리님
또 모든 내빈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신 모든 사우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짝짝 - 박수]
[불길한 음악]
[찰칵찰칵 - 카메라 셔터음]
[무거운 효과음]
[고조되는 음악]
앞으로 저희 한신 알렉슨은 전 세계 미래 생명 산업의…
[갈수록 고조되는 음악]
전 세계 미래 생명 산업의…
[남자] 왜 그래, 여진아?
괜찮아?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
- [경호원1] 사람 불러! - [경호원2] 회장님!
- [경호원] 차 대기시켜 - [요란한 카메라 셔터음]
[소현] 오빠, 밥 먹어!
- [앵커/TV] 주택 연금의 가입… - [태현/하품하며] 오빠, 해장국
[앵커/TV] 그중 한 사람만 60세를 넘기면 되고…
- 밥 안 먹고 뭐 보냐? - [상철] 형님
[앵커/TV] 네, 다음 뉴스입니다
세계적인 생명 공학 회사로 도약을 선포한 한신 알렉슨이
세계적 수준의 최첨단 시설인 제2 공장 준공식을
오늘 오전 천안에서 가졌습니다
한편 이 자리에서 축사를 하던 한신 그룹 한여진 회장이
현장에서 실신하는 일이 발생해 우려를 낳았지만
한신 그룹 측은 한 회장이 과로에 단순 몸살이 겹친 것으로 발표하며
건강 이상설을 일축했습니다
- 다음 소식입니다 - [띠리링, 탁]
가시죠
[어두운 음악]
[다급한 발소리]
[긴장감 도는 음악]
[옅은 웃음]
안 돼!
- [여진의 떨리는 숨소리] - 네?
가지고 나가세요
[예린] 어… 네
[의사의 한숨]
검사 결과를 보고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회장님
[드르륵, 턱 - 문소리]
[여진의 힘겨운 숨소리]
[떨리는 숨소리로] 어때요?
CT 결과는 이상 없고요
쓰, 빈혈기가 약간 있으십니다, 회장님
- [안도하는 숨소리] - [의사] 전형적인
피로와 스트레스입니다
무조건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회장님
하…
그러고 싶은데
그럴 때가 아닙니다
아, 회장님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입니다
지금처럼 무리를 하시다가는…
하다가는…
죽나요?
[옅은 한숨]
잠깐 나가 있지
알겠습니다, 회장님
[불길한 음악]
[드르륵, 턱 - 여닫히는 문]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는
환자의 비밀로 해주세요
네, 말씀하십시오
아까 얘기한 그, 빈혈과 스트레스 때문에
환각이 보일 수도 있나요?
이를테면
죽인 사람이 보인다든지
물론입니다
의학적으로 스트레스란 분노와 짜증같이
본인이 자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하셔서 푹 쉬시면…
입원요?
여기서요?
그야말로 앓느니 죽죠
확인됐습니다
- [최 대표[ 아니, 그럼… - 벌써 2기랍니다, 간암
- [부회장] 진짜 됐네! - 게다가 헛것도 본다네요
큰일 하셨습니다, 사모님
아직 좋아하긴 일러요
걱정할 거 없습니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으니까요, 예?
[남자들의 비열한 웃음]
이번 일은 우리 사모님의 공이 절대적이니만큼
뭐, 지분도 특별히 사모님께…
- [채영의 코웃음] - [부회장의 웃음]
그 얘긴 많이 들었던 얘기거든요
고 사장님한테서
아, 하…
지분 따윈 됐고요
다들 즐겁게 나눠 가지세요
난 한도준의 복수면 충분하니까
다들 고 사장 꼴 나지 않으려면 잘들 하세요
아직 갈 길 멀었어요
[멀어지는 발소리]
[옅은 한숨]
[다가오는 발소리]
[잔잔한 음악]
[여진/독백] 또 환각일까?
오랜만이네
어, 어
아… 여긴 웬일이야?
선배 좀 만나려고
당신은, 음, 병원에 왜 왔어?
어
나도 원장이랑 할 얘기가 좀 있어서
음, 그렇구나
몸은 괜찮아?
얼굴이 좀 까칠한데
음, 그냥 스트레스지, 뭐
바쁘게 사니까
당신 소식은 뉴스에서 잘 보고 있어
축하해
음, 고마워
정말 어디 아픈 데 없어?
[남자들] 아이고, 아이고 회장님, 회장님!
[남자들] 회장님, 회장님, 회장님!
[부회장] 아니, 괜찮으십니까?
일들 없으세요? 별일도 아닌데 여기까지 오고
[태섭] 회장님 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회장님이 강건하셔야… - 쓸데없는 소란들 피우지 마세요
보시다시피 멀쩡하니까
바쁠 텐데 나 먼저 가볼게
어
그래, 그럼
[여진] 김태현
응?
개업 축하해
축하는 무슨
잘 가
"진료 상담실"
[태현] 안녕하세요
- [민희] 어? - 어머, 선생님
아이고, 김태현
[태현] 아
[개운한 탄성]
와, 이거 진짜 좋네
- 우리 병원에도 놔야겠어요 - [띡 - 버튼음]
- 어르신들 좋아하겠는데 - [호준] 아이
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이쪽으로 와봐
[삑삑 삑삑 - 작동음]
[호준] 음
과장님, 예전보다 얼굴이 좋아지셨어요
어, 그래?
허, 다 니 덕이지, 뭐
[함께 웃는 소리]
요새는 수술도 많이 해
그래, 병원은 잘돼?
네, 뭐, 재밌어요
야~ 부럽다, 김 원장님
아이, 원장은 무슨 원장이에요
아, 어쨌든 원장은 원장이잖아
근데 웬일이야?
이쪽 보고는 오줌도 안 쌀 거 같더니
저…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음, 그래? 뭔데?
[어두운 음악]
[긴장감이 고조되는 음악]
[불길한 음악]
[무거운 효과음]
[여진의 흐느낌]
[여진] 하…
[여진의 힘겨운 숨소리]
[강렬하게 고조되는 음악]
만나보셨어요?
뭐라고… 하세요?
[타다닥 - 키보드]
[어두운 음악]
이상하네, 이럴 리가 없는데
내 아이디로도 회장님 CT를 볼 수가 없어
[옅은 한숨]
[한숨 쉬며] 그만 나가봐
[여 집사] 저, 회장님, 아무래도…
의사를 한번 만나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의사는 안 된다니까
저…
안심할 수 있는 의사도 있지 않을까요?
안심할 수 있는 의사?
[애잔한 음악]
[한숨 쉬며] 그 사람은 안 돼
그냥 의사와 환자로 보시면…
지금 내 모습을 봐
난 이제 괴물이야
더 이상 그 사람한테 상처 주기 싫어
아니요, 회장님 그냥 환자십니다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그리고 그분 환자를 마다할 분이 아닙니다
아무도 따라오지 마
알겠습니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그런 게 왜 궁금하지?
죄송합니다
직접 차를 몰고?
어디를 가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 걱정 마, 내가 알 것 같으니까
그나저나 어떻게 부모님 새집은 마음에 들어 하셔?
네, 누나, 금방 가요
네
[소현] 오빠, 어디 가, 이 시간에?
어, 도마의 집
누나가 아픈 애 하나 그리로 데려온다네
음, 왜 이리로 데려오지 않고?
뭐, 뭐, 사정이 있겠지, 다녀올게
[자동차 엔진음]
[채영] 여진아
[다가오는 발소리]
하, 여진이 맞구나
태현이 만나러 왔어?
쑥스러워? 뭐 어때?
마누라가 남편 보러 온 게
좋아 보이네
응, 요새 아주 좋아 마음도 편하고
어, 여기 위에 도마의 집이라고
갈 데 없는 애들하고 노인들 봐주는 데가 있거든
알아
들었어
흠, 아직도 내 동정 보고를 받나 보네?
[여진] 흠
별로 궁금하진 않은데
그렇게들 하대
그럼 김 원장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겠네
'김 원장'?
아, 태현이
친한가 보네
아…
그냥 뭐, 진짜 누나, 동생처럼 지내는 거지
태현이, 행복해
자기 인생에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었대
그러니까
그냥 놔뒀으면 좋겠어
저렇게 행복하게
채영아
응
나…
오빠의 환영이 보여
그래?
난 매일 보는데
[애잔한 음악]
[채영] 밥을 먹을 때도 보이고
길을 걸을 때도 보이고
그 사람…
아직 저세상에 못 갔나 봐
미안해
내가 니 오빠 살았을 때
너무 많이 괴롭혔었나 봐
[채영의 흐느낌]
[채영] 우리 모두
자기가 저지른 죄만큼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거겠지
물론 니가 원한다면
태현이는…
기꺼이 나눠 지려 할 테지만
[여진이 훌쩍이며 탄식한다]
[여진의 흐느낌]
[어두운 음악]
이상하네, 온다 그랬는데
[혀를 쯧 차며] 무슨 일이 있겠죠 나오지 마세요
하, 네, 그럼 살펴 가세요, 원장님
[자동차 시동 소리]
그래, 조심히 들어가
[여진/속마음] 태현아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나 곧 13층에서 내려올게
[멀어지는 차 소리]
[도준] 왜 그래, 여진아? 괜찮아?
[여진의 놀란 숨소리]
[끼이익 - 급정거]
[여진의 힘겨운 숨소리]
여진아
여진아!
괜찮아?
정신이 좀 들어?
[옅은 한숨]
아휴
얼굴이 이게 뭐야
[달칵 - 열리는 문]
[달칵 - 닫히는 문]
'일층의원'?
이름 좋네
나 보라고 지은 거지?
어디 안 좋은 거야?
음…
스트레스?
나쁜 짓을 많이 하다 보면 걸리는 병
많이…
힘들어?
[여진/속마음] 응, 힘들어, 태현아
[잔잔한 음악]
좀 이상해
당신 안색이 안 좋아
나랑 같이 정밀 검사 받아보자
흠, 다 해봤어
정상이래
다 마음의 병이야
[태현] 마음의 병이든
몸의 병이든
내가 다 치료해 줄 거야
걱정하지 마
고마워, 태현아
- 하… - [덜컹 - 열리는 문]
[잔잔한 음악]
미안해
당신 이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나 괜찮아
그리고
나 이제 13층에서 내려올 거야
정말?
결심했어
나 돌아오면 받아줄 거지?
이미 돌아왔잖아
바보야
[케이윌 '내게 와줘서'] ♪ 아닌 줄 알았죠 ♪
♪ 처음 봤던 그 순간 ♪
♪ 어떻게 그대 내게로 다가왔을까 ♪
♪ 수 많은 날을 힘들게 버텨왔는데 ♪
♪ 그대가 다가올 줄은 ♪
♪ 나 몰랐던 거죠 ♪
♪ 고마워요 그대 내게 와줘서 ♪
♪ 그대 하나면 충분한데 내겐 ♪
♪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죠 ♪
♪ 늘 그대 곁에서 웃어줄게 ♪
♪ 이런 내 맘 알아줘 ♪
♪ 거기 바로 바로 내가 있을게 ♪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휴
흠흠!
아, 왜?
[상철] 저, 회장님
밖에서 비서실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 [태현] 가라 그래 - 예
[여진] 아니야
기다리라고 해
왜?
오늘은 일단 돌아가야지
[여진] 나 내려간다 그래
[달칵 - 닫히는 문]
오더라도 짐은 정리하고 와야지
사람들 시키면 되잖아
그런 짐 말고
내가 짊어진 짐
너한테 나눠 가지자고 할 수는 없어
난 괜찮으니까
지금은 가지 마
당신 몸 좋아지면 그때 같이 가
걱정 마
내가 누구야
한번 마음먹었으면 절대 안 흔들려
[여진] 갖다 올게
[잔잔한 음악]
금방 올게
[달칵 - 닫히는 문]
- [여진] 집사, 물 좀 - [여 집사] 네
[여진] 실장도 앉아
[민 실장] 네
내일 아침에 긴급 이사회 소집해
네? 이사회를요?
혹시 무슨 이유 때문이신지 제가 미리…
내일 보면 알겠지
[어두운 음악]
그럼 가봐, 난 좀 쉬어야겠어
[민 실장]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달칵 - 열리는 문]
컨디션이 좋아 보이십니다
응, 좋아
부군님은 무탈하십니까?
그럼
집사 말 듣길 잘했어
감사합니다
집사가 우리 집에 온 지 얼마나 됐지?
30년 조금 못 됐습니다
하, 그렇겠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였으니까
[잔잔한 음악]
집사는 나보다 오빠를 더 좋아했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흠
괜찮아
회장님은 당당한 분이셨고
도련님은 불쌍한 분이셨으니까요
고마워요, 집사
오빠 편을 들어줘서
음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어두운 음악]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회장님은 암이십니다
그러셨군요
근데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한신 그룹의 미래가
집사한테 달려있기 때문이오
무슨 말씀이신지?
후계자에 대한 얘기입니다
[긴장되는 음악]
지금 법적으로 회장님이 돌아가시면
부군님이 상속자가 됩니다
따라서 유언장은 저희가 새로 작성할 겁니다
회장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절대 부군을 만나선 안 됩니다
오늘같이요
그리 해줄 수 있겠소?
저는 언제나
현재의 주인님을 위한 일에만 충실할 뿐입니다
그리 못 하겠단 말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주인은 바뀌기 마련이지요
그럼 믿어도 되겠습니까?
저희 같은 사람은 영혼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 자리엔 미래의 주인님도 계시니까요
[부회장] 고맙소, 집사
내 절대 집사를 잊지 않으리다
[여 집사] 영광입니다
어쨌든 부군에 대해선
내일부터 법원에서 접근 금지 명령이 나올 테니
바깥일은 신경 쓰지 마시고
집사님은 회장님과 집안 식구들 단속만 잘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직원] 어, 실장님, 아
회장님은 좀 어떠세요?
[타다닥타다닥 - 키보드]
자
[민 실장] 자!
회장님의 지시를 전달합니다
1, 이제 워룸은 해체한다
2, 그리고 여러분은
다시 부를 때까지
각자 원래 속해 있던 회사의 부서로 복귀한다
이상
[직원] 아니,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지금 진행하고 있는 건요?
- 흥 - [직원] 아니
며칠 전에 회장님이 직접 맡기신 프로젝트도 있는데
헤헤헤
참, 씨
- [턱 - 안경] -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도 필요 없어지는 거야
회장이 애들 버릇을 너무 버려놨네
내가 충고 한마디 할까?
각자 회사로 돌아가면
넥타이나 똑바로 매고 다녀
흥, 버러지 같은 것들
[민 실장] 씨…
[고조되는 음악]
[덜컹 - 닫히는 문]
[웅성웅성]
[타다닥 - 키보드]
[도준] 여진아
잘 잤어?
[엔딩곡] ♪ 고마워요 그대 내게 와줘서 ♪
.용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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